대한민국 100년 영화사에 장르물, 그것도 좀비물이 이렇게 대세를 이룬 적이 있었나 싶지만
어쨌든 질긴 생명력으로 코로나19가 장악해버린 썰렁한 극장가에서도 꾸물꾸물 기어나오니
약간의 시차를 두고 드디어 맞붙어버린 K-좀비 두 편! "#살아있다"와 "반도"의 빅 매치!!

뭐니뭐니해도 영화를 좌우하는 연출부터 보자면 "반도"는 "부산행"을 성공시킨 연상호 감독~
아 근데 이 분 기복이 좀 크다. 원래 애니메이션 출신으로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같은 묵직한
작품들을 내놓다 실사로 넘어와서 "부산행"으로 정점을 찍었는데 정작 스핀오프 애니메이션인
"서울역"은 이도저도 아니었지. 실사 두 번째인 "염력"은 폭망했고;;
그에반해 "#살아있다"의 조일형 감독은 이게 사실상 입봉작? 비교할만한 근거가 없다??
다음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살아있다"의 유아인과 박신혜, "반도"의 강동원과 이정현의 대결!
음 네 사람 모두 다 어디 내놔도 자기 몫은 하는 배우들이라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박신혜는 이렇게 몸을 쓰는 장르 영화가 처음이라는게, 강동원은 어울리는 배역과 그렇지않은
배역 사이에 간극이 좀 크다는게 걸린다. 결국 둘 다 변수가 하나씩 있으니 쎔쎔~
결국 영화 본편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 먼저 "반도"는 직접적인 접점이나 언급은 없을지언정
"부산행"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여 관객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는게 장점일까 단점일까?
또 기차 안에 국한되었던 전작으로부터 서울-인천의 넓은 공간으로 무대를 넓혀 스케일 대폭 업!
그 확장된 무대 위에서 전작과 확실히 차별되는 호쾌한 세기말 카 체이스가 펼쳐진다!
좀비가 다 머야 그냥 볼링 핀처럼 차로 밀어 쓰러뜨리고 오로지 적보다 먼저 골을 향해 달려라!!
게다가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구슬픈 음악 속 슬로우 모션과 눈물 속 절규의 환상적 하모니~
와 정말 마지막 3연타에서는 벌떡 일어나 기립 박수를 치려는걸 옆 일행이 말려서 못했네.
그에 비해 서울 한복판의 아파트에 고립되어 사투를 벌이는 "#살아있다"의 설정은 꽤 신선하다.
밖에 좀비가 드글대거나 말거나 게임을 한다던가 브이로그를 작성한다던가 드론을 띄운다던가
하는 이것은 오호라 세기말 일상물이었구나~ 했더니 맞은편 동의 처자와 알콩달콩 쪽지 보내고
라면 먹는 반전 로맨스물이었구나~ 했더니 초대받은 윗집 아저씨 부부가 서로를 너무 사랑하는
모습을 차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순애물이었구나~ 했더니...의 연속 옴니버스 물이었던 건가?
결국 핵심인즉 일상 속 사랑 이야기이니 각박한 관객들이여, 난리 부르스 중에서도 항상 말끔한
유아인의 면도 상태와 항상 투명한 박신혜의 피부 상태는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해 주셔야지~~
여기까지 온 바 굳이 우열을 가려야만 한다면,
호쾌한 질주 속 넘치는 가족애로 감동적인 "반도"는 왕년 숱하게 먹어본 익숙한 맛에 가까우나
예측 불허의 신박한 전개로 관객을 요리조리 몰다 끝내 깨달음을 선사하는 "#살아있다"의 맛은
비록 "성냥팔이..."부터 "...엄복동"까지 이어져온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는 다소 힘들지 몰라도
충분히 맛보기 힘든 진미라 하겠다. 아 진짜.
덧글
이상한 캐릭터에 어설픈 액션에 눈에 튀는 씨쥐도 비슷하고 무소음헬기 vs 박애 피스키퍼의 뜬금 마무리까지 참.
어떻게 저렇게 좋은 소재들을 가지고 이렇게 말아먹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