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기 힘들지만, 이 영화 기획의 발단은 의외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본인이었다고 합니다.
일을 쉬는 동안에 미드웨이 해전 관련 책을 읽고는 영화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나요.
그러다 어느날 각본가 웨스 투크와 만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웨스 투크 이 양반은 집안부터가 해군 집안인데다 본인도 당연스레 당연한 중증 밀덕이어서
에머리히 감독과 순식간에 의기 투합하고 각본을 물흐르듯 써내려가게 되죠. 각본 첫 장에는
'100% 실화' 라는 신선도 보증 마크까지 찍어서. 뭐 아시다시피 미드웨이 해전은 신의 장난이
아닐까 싶은 우연과 행운/불운의 연속이라 이런 언급 없으면 뻥이 심하다는 말을 들을 판이라.

요즘 기준으로 엄청난 대자본이 투입된 호화 대작까지는 아니지만 블록버스터는 블록버스터.
초대형 세트에 비행 갑판 깔아 항모 만들고 영화의 주역인 돈틀리스와 데바스테이터는 따로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설계도 떠와서 레플리카를 만들었습니다. 실제 TBD 데바스테이터는
그 안습한 활약상에 걸맞게(...) 현존하는 실기도 복원기도 없어서 이게 유일하다고.

요즘 이런 대전기 영화가, 특히 역사적 사건을 조망한 영화가 드물어서 그런가 실제 인물과
높은 싱크로를 보인 주조연 배우들도 한결같이 사실성을 강조하는 밀덕 성향을 보입니다.
조연급으로 내려가면 무작정 이 영화에는 출연해야겠으니 아무 배역이나 달라는 이도 있고
최고참급인 홀시 제독 역의 데니스 퀘이드는 의욕이 넘쳐 전쟁사 강의를 늘어놓을 태세!?

이 영화는 이렇게 열정적인 덕후들이 한가득 모여 으쌰으쌰 의욕적으로 만들었으나...
결과적으로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중국 자본을 끌어들인만큼 둘리틀 특공대의 중국 도착 이후
이야기도 넣는 등 공을 들였으나 하필 미중간 신냉전이 발발해 중국 흥행이 날아간 것도 컸지만
진주만, 마셜-길버트, 둘리틀, 미드웨이까지 펼쳐진 무대 위에 수많은 인물들이 달려가는 상황을
140분 남짓한 시간 안에 밀어넣는 것도, 그걸 일반 관객이 이해 공감하는 것도 무리였으니까요.
해전이 대강 어떻게 진행됐는지 아는 입장에서도 '와 벌써 장면 바뀐겨? ㅈㄴ 달리네?' 였으니
이 영화로 처음 접했을 관객의 입장은 어떠했을지 도무지 상상이..--;;
제작진과 출연진이 호언한만큼 실제 사실에는 대부분 부합하는, 밀덕의 관점에서는 보기 좋은
'화려한 재연 다큐멘터리'였지만 역사적 정합성과 영화적 완성도는 별개라는걸 다시 한 번 보여준
씁쓸한 예로 남았습니다. 저로서는 진주만과 둘리틀 따위(...)는 자막 처리하거나 자료 영상으로
넘겨버리고 미드웨이 당일만 건조하게 진행하거나 파일럿 한 명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하거나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데... 이미 지난거 이제와서 얘기해봐야 죽은 아이 XX 만지는 격~
그러니까 이게 성공했어야 외전(?) 격으로 자매들의 맏언니 요크타운의 불굴의 함생이라던가
최후의 전함대 전함 다이다이(??)였던 과달카날 해전이라던가의 영화화 희망을 가졌을텐데. ㅠㅠ
덧글
일반 관객이 이해하기 쉬우려면 관객이 감정을 이입할 파일럿과 모함, 사령관을 하나씩 뽑아서 수직계열화(?) 하는게 필요합니다.
주인공을 베스트 대위와 제6급강하폭격기대대로 삼은 시점에서 모함은 엔터프라이즈로 결정난 거고, 요크타운까지 등장시키면 혼동만 가중되겠죠.
함대 사령관인 플레처 제독 또한 엔터프라이즈가 승함이 아니었던데다 대중적 인기에서 홀시 제독이 워낙 독보적이기에 그쪽으로 몰았다고 봅니다.
문제는 이렇게 정리하고서도 등장 인물과 사건 사고가 너무 많았다는게....
...물론 이 정도 만드는 것도 중국 자본을 끌어와야 할 판에 가능할 리 없었겠지만요. ㅠㅠ
그러고보니 HBO에서 BOB, 패시픽에 이은 마이티 에이트를 만든다 카더라는 소리를 들은게 오래 전인데 여태 소식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