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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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 by glasmoon


그래픽 디자이너로부터 밴드 뮤지션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함을 뽐내는 이 중 한 명인
마이크 밀스의 2010년작 "비기너스"는 - 일단 로맨스라 한다면 - 꽤 독특한 로맨스 영화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하자면 로맨스를 빙자한 자기 성찰 및 치유에 관한 영화라고 해야 하나?
상처받은 영혼들이 서로의 가시와 흉터를 조심스레 걷어내며 보듬는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감각적인 각본과 편집, 미술에다 개성적인 캐릭터의 주변 이야기들로 비범하게 완성하였습니다.
감독 본인의 삶과 경험에 기반한 이 자전적 영화는 밀스 특유의 센스로 가득 채워진 덕분에
이쪽과 별 접점이 없는 저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당시 쓱 넘기지 않고 극장에 갔던 건
아직 생소했던 감독보다는 주요 출연진들의 묵직한 이름 때문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죠.


작중 화자이며 감독의 분신일 주인공 이완 맥그리거는, 물론 언제나처럼 연기를 잘 했지만서도,
소극적으로 위축된 캐릭터의 심리 때문인지 그의 주요 필모그래피에 올라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에 비해 상대역 멜라니 로랑은 반짝반짝 빛나며 "바스터즈"에서 그녀를 캐스팅한 타란티노의
안목이 역시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남녀 주인공들보다도 돋보였던건 150여개의 단어를 알아듣지만 말을 할 수 없어 슬픈
잭 러셀 테리어종의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나이 75세에 이르러 커밍아웃한 노년의 게이를 더없이 멋지게 연기한 크리스토퍼 플러머였죠.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누구나 인정하는 대배우이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의 폰 트랩 대령을 빼면
그의 대표작은 일정한 성향의 캐릭터들이 대부분 채우고 있는것 또한 사실입니다.
역사적인 인물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강인한 남성이거나, 후기에 들어서는 완고한 노인이거나.
비교적 최근에 주목받았던 "올 더 머니"나 "나이브스 아웃"에서도 비슷한 모습이었구요.
물론 사이사이 그렇지 않은 캐릭터와 연기가 있었음에도 그런 식으로만 기억하고 있던 저에게
"비기너스"에서 죽어가는 늙은 게이 할 필즈의 모습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움의 수준이었고
그건 저만의 느낌이 아니었던지 아카데미는 2012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으로 화답했습니다.


며칠 전 그의 부고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가 의외로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로마 제국의 몰락", "왕이 되려던 사나이" 외 기타등등 전성기 작품이 아닌 "비기너스"였던걸
보면 이 영화와 그 속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모습이 어지간히 인상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절대 다수의 배역과 달리 플러머 본인의 모습은 근엄하기보다 유머러스했기 때문인지도.

아카데미의 연기상으로는 최고령 수상("비기너스")과 최고령 노미네이트("올 더 머니") 타이틀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연기에 여한은 없으려나요. 이렇게 또 하나의 별이 하늘로 올랐습니다.

덧글

  • 워드나 2021/02/17 23:00 # 답글

    저는 트레키라서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이 망작인 스타 트렉 6편이었습니다만... 거추장스런 외계인 분장을 하시고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 주셨지요!
  • glasmoon 2021/02/18 16:07 #

    스타트렉에도 나오셨었군요! 트레키가 아니어서 그것까진 몰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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