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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여행 #106 제주 한림성당 by glasmoon



올레 걷기가 충분히 익숙해지고 거의 끝나가는 지금, 몇 남지 않은 코스들 주위로 하필
가볼만한 성당이 몰려있다는게 무슨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14코스가 끝나는 한림에도 제주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성당이 한 곳 있습니다.



14코스 종점이자 15코스 시작점에서 바깥쪽으로 한 블록 올라와 한림항입구 사거리에 서면
길 건너편으로 제주의 검은 석재로 쌓아올린 종탑이 보이죠. 천주교 한림성당입니다.



제주답게 입구를 정낭으로 해둔 것부터 아주 재미있습니다.
나무의 길이가 아예 짧은 것으로 보아 실제로 쓰진 않겠지만 성당은 늘 열려있는 곳이니~



한림에서는 한국전쟁과 4.3사건이 한창이던 1951년에 공소가 설립되어 1954년 본당으로
승격되었습니다. 본당이라 하나 서른 남짓한 신자에 건물도 없는 곳에 부임한 아일랜드 출신
맥그린치 파트리치오(우리이름 임피제) 신부는 사비와 모금을 통해 성당을 짓기로 합니다.
땅은 마련했으나 자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목재를 실은 미군의 수송선이 하필 인근에
좌초하고 군종 신부가 모금을 도와주는 등의 우연(?)이 겹쳐 성당은 무사히 완공되었습니다.
아마 외벽에 석재, 그것도 제주에 흔한 현무암이 사용된 것은 비용과 조달의 문제가 컸겠죠.
그 뒤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랫동안 한림읍의 랜드마크가 되었었는데...



1990년대에 이르러 제주에도 개발의 바람이 불고 도로가 확장되면서 결국 성당은 철거되고
현재 전면 중앙의 가장 높았던 종탑만이 남아있습니다. 지금같으면 어림없는 일이었을텐데요.
맥그린치 신부를 비롯하여 이 성당에 애착 있는 분들이 얼마나 아쉬워 하셨을지.
성당을 짓는 외에도 양돈 기술을 전파하고 복지 시설 확충에 노력하는 등 평생 제주를 위해
헌신하신 맥그린치 신부님은 2018년 선종하셨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현무암을 쌓은 제주식 돌담 안쪽으로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돌담이 ㄷ자 모양으로 꺾여있는 걸로 보아 옛 성당이 있던 바로 그 자리를 표시한 것이던가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옛 성당의 모습을 간직하고자 하는 뜻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성당치고는 특이하게도 안에 작은 연못? 분수?를 가졌는데 옛 성당의 내부라고 가정한다면
가운데 솟아오른 자리가 원래 제대가 있던 위치와 얼추 맞아들어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옆으로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상이 세워져 있구요. 참 올해가 탄생 200주년이신데..;;



신부님의 상과 마주보듯 현 성당 앞으로 성모 마리아의 상이 내려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당이 갑자기 헐린 뒤로 한림 본당은 고등어와 옥돔부터 살충제까지 판매하는
모금 운동을 벌였고,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2001년 현재의 새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설계는 한빛건축사사무소의 김종우 씨가 하셨다는군요.



성전 입구에는 주보 성인인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부조상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서양식 인물과 천사에 동양식 복식과 문양이 조합된 모습.



완전한 현대 건축물이지만 성전 내부는 의외로 3랑식이며 회랑은 두꺼운 기둥이 받칩니다.



재미있는건 천장마저도 아치가 교차하는 고딕식 볼트(궁륭)를 모방하고 있다는 거죠.
물론 중세가 아닌 현대에는 저런거 없이도 높이와 하중 분산에 문제 없으니 장식 요소입니다.



마찬가지로 아치 라인으로 장식된 제대 뒤편도 고딕식 앱스(후진)에서 땄겠군요.
십자고상이 걸린 중앙부는 따로 대리석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역시 고딕을 떠올리게하는 뾰족한 창문들과 장식된 색유리화들.



성전을 나와 한 바퀴 돌아보니 앞에서 봤을 때는 그저 현대식 성당이라고만 생각했구만
의외로 로만 십자가 형태의 바실리카 구조에 기반하고 있다는걸 뒤늦게 알아챘습니다.
왼편 건물과의 사이에 자그마한 중정도 있던데 그 건물이 수업중인 유치원이라 후다닥;;



옛 성당이 무사히 남아있었다면 물론 더할나위 없었겠으나...
현 성당도 아름답게 지어져 건축상도 받는 등 신구의 조화를 이루었으니 어쨌든 다행인 걸로.



참 안뜰의 이 비석을 못보고 지나칠 뻔했네요.
1950년 한림에서 출생하여 이 본당 주임으로도 계셨던 임승필 요셉 신부님의 추모비입니다.
임승필 신부님은 1979년 바티칸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아 1989년부터 성경의 새 번역에
몰두하여 2002년 14년간의 작업을 끝내신 뒤 이듬해 선종하셨습니다.



구 성당이 남긴 토속적인 요소들과 신 성당이 새로 쌓아올린 정갈함, 그리고 제주 특유의
수목들이 어울려 얼핏 이국적이면서도 지극히 한국적인 한림 성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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