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위기가 번져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마을 전체가 소멸해버린 네바다의 어느 시골.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그녀도 결국 가재도구를 보관 창고에 맡기고 오래된 밴에 시동을 건다.
자동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거리를 찾아 아마존 물류센터, 대형 캠핑장, 여행자 식당 등을
옮겨다니는 생활 속에 저마다의 이유로 길에 나선 유랑민(노매드)들을 만나는데...

행여 켄 로치가 연출했더다면 주인공이 대뜸 역정부터 내도 뭐라 할 수 없을 법한 상황이다.
대규모 경제 위기를 불러온 부동산 버블이나 모기지 론, 금융권의 탐욕을 지적할 수도 있겠고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을 제때 적절하게 구제하지 못한 사회안전망의 미비를 말할 수도 있으며
특히나 요즘같으면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거대 플랫폼 기업의 노동력 착취를 무시하기 힘들 터.
하지만 정규직이나 채용 안정 따위(?)에 큰 관심 없는 클로이 자오와 유랑민들에게 아마존은
그저 크리스마스 시즌에 일하기 좋고 보수도 짭짤하게 쳐주는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일 뿐이다.

무료급식소에 나가 말을 붙여볼라 치면 절절한 사연 하나쯤 없는 이 없다고 했던가.
차 한 대에 몸을 싣고 미 대륙을 떠돌며 노숙하는 그들도 저마다 말못할 이야기를 품고 산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 친한 동료의 죽음에 회의를 느낀 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
너무나 큰 상실을 겪은 그들에게 떠도는 유랑의 삶은 낭만적인 혹은 무책임한 선택이 아니라
그러한 속에서도 살아나가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자 계속 살아가야하는 이유를 찾는 과정,
그리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었음을.

하늘 아래 탁 트인 미국 중서부의 황량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으로 가슴에 사무치는 화면과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담담한 피아노 선율이 관객의 가슴 속에 폭풍을 일으키는 영화이자
"파고", "쓰리 빌보드"에서처럼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말없는 얼굴이 모든걸 말하는 영화.
몇 해가 지나 네바다의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집안과 보관 창고의 물건을 모두 정리하고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길을 떠난다. 몸의 정착은 없어도 마음의 안식은 찾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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