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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 현대불교미술전 空 by glasmoon



비온 다음이라 하늘이 좋네요. 6월의 주말 아침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한국 천주교 최대 순교지 중 한 곳입니다.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에
걸쳐 수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죠. 1984년 시성된 103위 성인 중 44명이, 그리고 2014년 시복된
124위 복자 중 27명이 이곳 서소문에서 순교했다는 것에서 그 규모와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죠.

이 자리에는 오랫동안 서소문 공원이 있어왔습니다. 이 순교자 현양탑은 103위 시성이 있었던
1984년에 한 번 세워졌다가 공원이 재개발된 1999년에 다시 새로이 세워졌다는군요.
그러나 공원 일대가 오랫동안 공영(쓰레기차) 주차장, 쓰레기 재활용 처리장으로 이용되던 중에
정부와 지자체, 교회가 지상은 서소문 역사공원, 지하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으로 만드는데
합의하면서 공사 끝에 완전히 새로 태어난 것이 지난 2019년의 5월이었습니다.
2만1천 제곱미터 대지에 지상 1층 지하 4층으로 385 제곱미터라는 작지않은 건축을 위한 설계는
윤승현, 이규상, 우준승 세 분이 하셨다고.



박물관 밖의 공원에서도 눈에 보이는 특이하다 싶은 조형물들은 모두 설치 예술 작품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개중 가장 유명할,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이 없기를 바라며 티모시 슈말츠가 만든
"노숙자 예수(Homeless Jesus)".



공원 안쪽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면 갑자기 확 트이면서 널찍한 공간이 나타납니다.
이 공원은 또한 박물관의 옥상이기도 하죠. 잔디 광장 왼편과 뒤편으로 보이는 붉은 담벼락은
지하에서 만나게되는 진입 광장과 하늘 광장의 지상 경계입니다.



박물관의 간판(?) 역할을 하고있는 이것은 조완희, 조준재 씨의 작품 "서소문 밖 연대기" 입니다.
무수히 많은 작은 십자가들로 이루어진 칼의 형상이 이곳에서 이루어진 피의 역사를 말하는 듯.
칼의 아래위로 1801(신유박해), 1839(기해박해), 1866(병인박해)의 연도가 양각되었습니다.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보니 남쪽 염천교 쪽에서 들어오는 완만한 경사로도 있군요.
벽의 "월락재천수상지진(月落在天水上池盡)"은 우리나라 최초의 세례자이자 신유박해때 순교한
이승훈 베드로의 말(달은 떨어져도 하늘에 있고 물은 솟구쳐도 연못에서 다한다)을 표현한 것.



돌아서 내려온 진입 광장이자 박물관의 입구 옆에도 이경순 씨의 "순교자의 칼"이 서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찾은 이유가 입구 위에 걸려있네요. 역사 박물관 개관 2주년 기념 특별 기획으로
"현대불교미술전 – 공(空) Śūnyatā"이 진행되고 있거든요. 4월에 시작할 때부터 본다본다 하던게
결국 끝나갈 때가 되어서야 이렇게;; 뭔가 복잡한 전시 제목인즉 산스크리트어에서 공허를 뜻하는
순야타 라는 단어가 불경이 중국어(한문)으로 번역되면서 空, 우리말로 공이 되었다고 합니다.



내부는 회색 콘크리트와 검은색 철제 빔, 붉은 벽돌과 나무 바닥이 요소요소에 사용되었습니다.
지하 1층과 아래는 지하 3층이고 지하 2층은 그 사이 옆으로 빠져있다거나 그런 층간 위상을
수직 관통하여 정리하고 있다거나 하는 등 그냥 돌아다니기에도 꽤 재미있는 공간입니다.



전시실에 내려가지 않아도 안이 온통 미술품으로 가득하다보니 뭐부터 봐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안쪽 맨 끝에 비교적 평범한 회화 한 점이 있길래 한 장 찍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잘 알려진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를 묘사한 이수경 씨의 "가장 낮고 거룩한 손길".



오랫동안 성당 여행을 다닌 버릇이 어디 가지않아 일단 경당부터 가보기로 합니다.
정식 명칭은 '성 정하상 기념경당'이 되는군요. 103위 성인 중 평신도를 대표하는 위치였고
서소문에서 순교한 많은 이들 중 가장 공경받는 분이기도 하니 마땅하고 당연한 일이겠죠?



가운데를 축으로 전체가 육중하게 회전하는 경당의 출입구 "순교자의 문".
역시 'ㅅㅅㅁ'을 빌려 서소문 부근과 이곳에서 죽은 순교자들을 표현한 조완희 씨의 작품입니다.
양각 표현된 사각 점들 중 황금색이 입혀진 44개는 서소문에서 시성된 44위를 뜻한다고.



원호 형태로 둥글게 말린 입구 맞은편 벽에는 두꺼운 부조상들이 십자가의 길 14처를 이룹니다.
장동호 씨의 작품.



말리면서 생긴 모서리의 공간에는 장준호 씨가 만든 성모상(피에타)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품에 안고있는 것은 아기 예수가 아니고 처형된 자식의 머리라는 데서 이거 참. ㅠㅠ



박물관에 딸린 작은 경당임에도 있을 것들은 다 있고 무엇보다 매우 아름답군요.



십자고상은 벽면 대신 제대 옆에 세워졌고, 그 앞에는 성인의 유해 일부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감실대는 입구 성수대와 함께 한진섭 씨의 작품.



경당 바깥의 좁은 공간에 나란히 세워진 성인 가족의 흉상들을 못보고 지나칠 뻔했군요.
아버지 정약종과 어머니 유소사, 형 정철상, 여동생 정정혜, 그리고 본인 정하상에 이르기까지
천주교 박해로 일가가 모두 순교하였습니다. 올 봄 영화 "자산어보"를 보면서 뒤늦게 마재 성지와
천진암 성지를 다녀왔건만, 올해는 정말 정씨 분들을 만나보는 해인 모양입니다.



이제야(...) 박물관 전시실로 들어갑니다.
상설 전시실에는 예상과 달리 천주교 관련 문헌 뿐만 아니라 조선의 사상적 흐름을 망라합니다.
경국대전부터 시작해서 송시열의 송자대전, 이익의 성호집 등등을 거쳐 정약용의 목민심서나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까지 이어진 것을 천주실의와 성경직해까지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또 작품들이 들어가있죠. 이 사진은 서로 다른 두 작품이 조화된 경우로
벽면은 김기희 씨의 "103위 성인을 위무함', 바닥은 최지만 씨의 "순교자의 무덤" 입니다.



신앙과 부활을 유리와 빛, 소리와 영상으로 표현한 손승희 씨의 "척사윤음(斥.邪.綸.音)".



크기로나 구성으로나 가장 시선을 잡아끄는 작품은 가로 9.3 미터, 세로 3미터에 달하는 대작
"일어나 비추어라" 일겁니다. 김경자 씨가 김의용 소목장, 강정조 나전장, 손대현 옻칠장과 함께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과 순교자 124위 시복을 기념하고 통일을 염원하며 만든 작품으로
십장생도의 기본 위에 한국 천주교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나전칠화 기법으로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특별 전시실의 주인공, 현대불교미술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개관 2주년을 맞아 종교의 보편적인 진리를 탐구하고 성찰하는 의미로
'공(空)'을 테마로 불교 사상을 예술로 해석 표현한 현대 작가 13인의 작품을 전시하였습니다.



미술에 안목이랄게 없다보니 구성에 가까운 현대 회화는 해설 없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네요.
오른쪽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네 면을 소재로 네 점이 묶인(맨 끝 그림은 사진에서 잘렸;;)
이종구 씨의 "사유 - 생, 로, 병, 사" 는 흥미롭죠.



또 삼베에 수백 분의 모두 다른 부처님을 그려넣은 이수예 씨의 "만남",



한지에 그린 부처의 수인(手印) 뒤로 조명을 밝힌 이주원 씨의 "길에서 조우하다" 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아니더라도 이번 불교미술전의 간판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이것이었죠.
국보 제301호인 구례 화엄사의 영산회 괘불탱(靈山會 掛佛幀). 가로 약 8 미터, 세로 약 12 미터의
거대한 불화이다보니 지하 1~3층을 관통하는 공간에도 다 펼쳐지지 못하고 약간 감겨있습니다.



이 영산회 괘불이 걸린 자리는 사실 전시장이 아니라 콘솔레이션 홀의 외벽이었는데
그 안쪽 내벽에서는 김기라 씨의 "장님 - 서로 다른 길"과 "세기의 빛 - 정토"가 상영됩니다.



근데 이곳은 이름(consolation hall)에서 보듯 순교자의 무덤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
이렇게 안치된 유해함 뒤로 수많은 부처님들이 내려다보는 장면에는 온몸에 살짝 전율이~~



콘솔레이션 홀 맞은편, 지상까지 뻥 뚫린 하늘 광장에는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었군요.



광장 왼쪽 구석의, 지상으로 연결되는 하늘길에는 사찰 마당을 비로 쓰는 스님의 행동을
미디어 아트로 옮긴 김승영 씨의 "쓸다"가 있었는데 아무리 해도 잘 찍히지 않아 포기하고
더 위쪽에 전시된 권석만 씨의 작품 "발아"로 전시회 겉핥기 구경을 마무리합니다.



출퇴근 경로상에 있는 곳이다보니 매일 오다가다 보면서 가야지 하던걸 실행으로 옮기기까지
2년이나 걸려버렸네요. 장소 자체의 역사성에다 새로이 해석된 지상하 공간이 주는 흥미로움,
전시된 작품들의 수준과 서로 다른 종교간의 이해에 이르기까지 매우 뜻깊은 전시라 하겠습니다.
다만 현대불교미술전은 오는 6월 말로 종료되므로 아직 보지 못하신 분은 이제 서두르셔야~!?

덧글

  • 이요 2021/06/15 11:12 # 답글

    6월말 까지군요. 얼마전에 알게 되어 꼭 가봐야지 하던 참입니다.
  • glasmoon 2021/06/16 14:21 #

    저도 더 미루다간 놓치고 후회할 것 같아 무작정 다녀왔습니다~
  • 워드나 2021/06/16 11:16 # 답글

    아름답습니다.
    저도 이륜차로 과천 현대미술관에 자주 갔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안 간지 1년이 넘었네요.
  • glasmoon 2021/06/16 14:23 #

    그래도 미술관은 어지간해선 사람이 몰리지 않는데다 요즘은 입장수 제한도 두고 있어서 큰일은 없을것 같더라구요.
    코로나가 장기화되는 와중에 미술관 투어라도 시작해볼까 생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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