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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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끼를 물어부렀네 by glasmoon

* 본 포스트는 부득이하게 영화 "랑종"의 내용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홍진의 영화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곡성"이 어떻게 나를 매료시켰는지 돌아본다면
익숙하지만 낯선 무속 신앙의 세계를 화려하게 보여줌과 함께 영리한 각본과 세련된 연출로
선과 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나타내면서 선악의 개념 자체를 흔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든 루카 구아다니노가 리메이크한 "서스페리아"와 함께 잊을 수 없는 영화로 남아있는
그 "곡성"의 속편이자 프리퀄로 만들고자 했던 무당 일광의 이야기가 제작 전 단계에서 멈추자
해외로 돌려 태국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과 협업 아래 새로운 샤머니즘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님'이라는 이름의 랑종(무당)과의 인터뷰로 시작되는 영화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띤다.
아시아권 샤머니즘의 유사성은 태국의 무속을 본적 없을 우리나라 관객들의 관심을 끄는 한편
조금씩 다른 미묘한 차이로 호기심과 긴장감을 유발한다. 이러한 거리두기 덕분에 무속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이라던가 생활을 영위해야하는 한 인간의 입장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에 이르면
사람 사는 동네 똑같다는 공감과 안도의 웃음과 함께 잠시 실제 다큐인양 착각할 법도 하다.
하지만 일단은 공포 영화 아닌가. 관객들이 기대하는 공포를 보여주려면 페이즈를 바꿔야겠지.



님의 집안 식구들에게 흉사가 이어지면서, 또 조카 '밍'에게 기이하고 불길한 일들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따라붙으며 몰래 카메라와 같은 관찰 혹은 관음적 시선으로 전환되고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게 되면서부터는 아예 "파라노말 액티비티" 식의 전개가 된다.
빙의된 채로의 섹스라던가 개를 잡아먹는 등의 논란이 되는 장면 다수가 이 파트에 속하는데
일단은 다큐라면서 이런걸 막 찍어대고 또 찍었다며 그냥 내보내는 윤리의 실종도 문제거니와
카메라 하나를 더 거쳐 전달되면서 고어의 수위는 줄었을지언정 선정성은 더욱 강조되어버린다.



그리고 절정으로 치달아가니 귀신같이 님은 퇴장하고 돌고돌아 결국 봐오던 퇴마물이 되어
시점은 파운드 푸티지로 다시 한번 전환된다. 이쪽 장르는 극한의 공포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계속 들고있게 만드는 당위성 또는 설득력이 관건일 터이나 예정된 파국이 찾아오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 교양 다큐 찍는다는 사람들이 내장 쏟아지는 것까지 친절하게 보여주는건
참 뭐라 해야할지. 찍을거 안찍을거 구분 못하고 카메라 들이대던 프로 의식(?)의 업보인가.



마지막 의식 일부와 인터뷰를 통해 "곡성"에서처럼 신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사족에 그치고
결국 악마 씌인 소녀의 퇴마라는 고전 중의 고전을 색다른 배경에서 페이크 다큐의 형식을 빌어
그 아래에서 가능한 여러 관점을 차례차례 동원하여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영화라고밖에.
비록 나홍진이 직접 연출하지는 않았더라도 제작 전반에 깊숙하게 개입한 것 또한 사실이므로
나홍진류 작품들의 장점은 옅어지고 단점은 강화되었다는데서 그의 책임이 없다고 보긴 힘들다.

하여간 공포 영화들도 조심스러운 터부와 패륜을 거리낌없이 몽땅 쓸어넣어 관객을 불쾌하게
만드는 그 하나는 인정할만한 바, '사람 잡는 엽기와 패악'이라는 평식이형 말씀이 참으로 옳다.
그 불쾌함과 찝찝함을 굳이 돈을 내고 확인하겠냐 하는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서도.
씁, "곡성"이 남긴 잔상과 언론들의 설레발 마케팅에 나도 그만 미끼를 물어불고 말았네.

덧글

  • Ryunan 2021/07/21 15:59 # 답글

    시사회 후기들이 아니었다면 조금은 더 나았을 거 같은 느낌이에요. 설레발들이 너무 했음 ㅎㅎ
  • glasmoon 2021/07/21 17:07 #

    지금 되돌아보면 '무서웠다', '대단했다' 이런 것보다 '끔찍했다'는 뉘앙스가 많아서 약간 납득이 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역대급 설레발..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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