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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여행 #130 천안 병인박해 150주년 기념성당 (성거산성지) by glasmoon



언제나 짧아 아쉬운 가을이 순식간에 다 지나가고 오늘부터 영하의 기온이 되었네요.
아직 가을 분위기가 남아있던 11월 초에 단풍 구경 삼아 다녀온 성거산 성지입니다.



천안 지역 위례산 아래의 성거산은 과거 고려 태조 왕건이 지나다 보고는 신령한 기운이
감돈다 하여 성거(聖居)산이라 이름붙였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천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뒤
경기 남부와 충청 북부의 신자들이 들어오고 박해를 받으면서 정말 성스러운 산이 되었죠.



산으로 올라가는 중턱에서 만나는 이곳은 2011년 완공 봉헌된 성거산성지 관리성당입니다.
건물 옆으로 박해와 순교를 상징하는 변형된 십자가가 높이 솟아 그 때의 정신을 기립니다.



먼저 성모상에 인사를 드리고...



이 관리성당의 성전은 특이하게 측면과 지붕을 제외한 전후면이 모두 유리로 되어있습니다.
동쪽을 바라보는 입구쪽으로 장식된 색유리가 아침 햇빛을 받으니 효과가 극대화되는군요.



반대쪽 제대측도 색유리는 아니지만 이렇게 전체가 유리여서 개방감이 대단합니다.



그리고 더욱 재미있는건, 물론 제대 왼편으로 십자가가 세워져있긴 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팔벌린 예수상이 사실상 십자고상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죠.



그러니까 실제로는 이렇게 건물 바깥에 세워져 있습니다. 하나를 세워서 두 배의 기쁨이랄까,
전면을 통유리로 덮거나 유리창을 크게 낸 성전을 몇 군데 보았지만 이런 배치는 처음이네요.



이 관리성당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건축물이지만 오늘의 일정은 이제 시작일 뿐이죠.



산길을 따라 3 킬로미터 정도 더 올라가면 드디어 본격적인 성거산성지를 만나게 됩니다.



성지 홈페이지의 안내도를 빌려왔습니다. 제가 멈춘 곳은 제1 줄무덤으로 들어가는 제1 주차장.
조금 위에 제2 주차장이 있고 길이 아예 기념성당까지 이어지기도 하지만 줄무덤들과 십자가의
길을 비롯한 성지 전체를 둘러보려면 제1 주차장에서 시작하는게 좋아 보이는군요.



제1 줄무덤에는 총 38기의 봉분이 있지만 실제 묻힌 수는 훨씬 많다고 여러 사람이 증언합니다.
병인박해 당시 이 성거산의 소학골 교우촌에서 모두 10명의 순교자가 나왔다고 하는데
그중 최천여 베드로, 최종여 라자로를 비롯한 다섯 분이 이 제1 줄무덤에 안치되었습니다.



제2 줄무덤을 향해 올라가려면 자연스레 십자가의 길을 통하게 되네요.



십자가의 길 끝에 조성된 성모 광장.



제2 줄무덤에는 모두 36기의 봉분이 있습니다. 성거산 정상 부근에 공군 부대가 생기면서
지금의 진입로를 닦았던 인부들의 증언에 따르면 도로상에 있었던 묘가 모두 107기였다고.



그 다음 기념성당은 잠시 뒤로 미루고, 길을 따라 좀 더 가보기로 합니다.



11월 초순 가을이 절정일 때라 그냥 이대로 단풍 구경이로군요. 사실 그걸 겸해 오기도 했;;;



볕 좋고 경치 좋은 이 산등성이 주변이 바로 소학골 교우촌이 있던 그 자리라고 합니다.
1900년을 전후하여 생겨난 성거산 일대의 교우촌에는 뮈텔 주교나 최양업 신부가 방문했었고
병인박해 당시에는 관에 쫓기던 칼레 신부와 페롱 신부 등이 숨어지내다 출국하기도 했다고.
이제 소학골의 대부분이 시간 속에 사라졌지만 이렇게 끝의 집 셋이 남아 보존되어 있군요.
이 천안 성거산 천주교 교우촌터는 2008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성지를 빙 돌아본 끝에 드디어 만나보는 오늘의 주인공, 병인박해 150주년 기념성당입니다.



흔히 아는 서양의 모습도, 여행 다니며 왕왕 보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옛 모습도 아닌
지금 현재 우리 어머니를 닮은 성모상.



2016년 병인박해 150주년을 맞아 이 줄무덤들과 교우촌터를 낀 자리에 새로운 성당의 건립이
추진되어 다년간의 공사 끝에 지난 2021년 10월 30일 봉헌식을 가졌습니다.
한 주 뒤인 11월 7일 제가 방문하여 갓 태어난 새 성당을 보는 흔치않은 기회를 가졌죠.



엠피아트의 민현준 씨가 설계를 맡은 이 성당 건물은 기본적으로 노출 콘크리트의 형식이지만
흔히 떠올리는 안도 다다오식의 직사각형 거푸집 자국이 찍힌 각지고 반듯한 건물이 아니라
곡면과 세로 결무늬, 그리고 일부에 금속 재료와 포인트 색상이 들어간 독특한 구성입니다.



통유리가 시원한 전면부만 잘라보면 시내 어딘가의 목 좋은 카페처럼 보이기도 하군요.
사진 오른쪽 아래 그림자는 제가 괜히 모양 낸다고 팔 벌리고 촬영을 한 게 아니고...



먼저 본 관리성당에서처럼 팔 벌린 예수상이 건물 전면에 서있거든요. 기막힌 계승이랄까~



곡면들이 맞물려 길게 뻗어나온 자리에 만들어진 동굴과도 같은 입구를 지나 들어가면



낮은 천정에 점점 좌우로 좁아지며 아래로 경사진 성전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일대의 산줄기와 함께 나란히 선 제대, 감실, 그리고 십자가들.
분명 실내이건만 야외 미사를 드리는 것만 같은 초현실적인 기분?



양측 벽면에는 양떼와 그를 비추는 빛(성령?)을 표현하는 색유리화가 장식된 사이로
십사처 부조상이 걸렸습니다.



건물의 뒤편 서쪽면에 왠지모르게 커다란 문이 달려있다 했더니 실내 수용 인원을 넘어가는
대규모 행사 때는 이 문을 열어 바깥의 계단까지 확장하려는 것이었겠네요.



건물 위 옥상에 놓인, 십자가를 바라보는 주리틀기 형구가 이 성당의 의미를 떠올리게 합니다.



국내에만 백 곳이 넘는 성당들을 구경하고 다녔지만 산 정상 부근에서 내려보는 이런 입지는
보지 못했고 아마도 달리 없지 않을지. 150년이라는 시간이 무척 길어보여도 절두산 성지의
100주년 기념성당으로부터 또 50년이 지난 셈이니 아주 오래전 일도 아니라는게 체감됩니다.



아마도 올 가을의 마지막 나들이가 되겠기에 산(성거산)으로 가나 바다(갈매못)로 가나
고민하다 단풍도 볼 겸 산으로 왔구만 때마침 새 성전을 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네요.
산이라고는 해도 해발 500미터 정도인데다 정상의 공군 부대 덕에 도로도 모두 뚫려있으니
좋은 풍광 속에 성지의 의미를 되살리며 가볍게 산책하는 정도로 한 번 가보셔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올해의 라이딩은 종료...
올해 수도권 바깥으로 나간게 봄에 해미 성지와 가을에 성거산 성지, 딱 두 번 뿐이었네요.
이제 큰애도 떠나보내고 너밖에 없는데, 내년에는 좀 자주 다니자??


성당 여행 #081 서울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성당 (절두산성지)

덧글

  • Ryunan 2021/11/26 08:54 # 답글

    좋네요. 천안이라 가까운데 한 번 가봐야겠어요.
  • glasmoon 2021/11/27 17:33 #

    사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반대쪽으로는 천안 시내가 내려보이더라구요. 가깝다면 강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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