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다녀온 공주 여행의 상세 리포트, 그 첫 번째는 물론 국립공주박물관입니다.

비교적 날씨가 좋았지만 아침에는 그래도 영하이기에 일단 실내인 박물관부터 가기로 했죠.
개관 시간에 얼추 맞춰 도착했는데도 비슷한 생각을 한 건지 먼저 온 분들이 계시네요.

국립공주박물관은 공주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좀 떨어져있어 접근성이 좋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걷지 못할 거리도 아니니 자동차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버스나 택시로 들어간 뒤
한옥마을, 무령왕릉, 황새바위성지를 차례로 거치며 걸어나오는걸 추천합니다.

박물관 입구 앞을 지키고 있는 이 대형 꽃돼지! 의 정체는 조금 있다 알아보기로 하구요~

국립공주박물관의 존재 의의는 누가뭐래도 무령왕릉 발굴과 거기에서 나온 유물에 있겠죠.
발굴 50주년을 맞아 지난 가을부터 내년 3월까지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문화재청과 공주시가 진작부터 '무령왕의 해'라며 대대적으로 준비하였으나 코로나가;;;

무령왕릉의 주인, 백제의 제25대 어라하 무령왕은 6세기 초 백제의 중흥을 이끈 왕입니다.
고구려에 수도 위례성을 잃고 개로왕이 죽으면서 한 번 망할 뻔했던 백제를 선대 동성왕과 함께
다시 일으킨 장본인이죠. 일본행 사신단에 함께 있던 어머니가 여행 도중 카카라노시마(各羅島)
에서 낳았기에 섬(시마,세마)에서 태어난 왕이라 하여 사마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는군요.

사설전시관은 무령왕과 왕비의 목관을 중심으로 발굴된 주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관 앞에서 무덤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진묘수. 박물관 앞에 서있던 그 꽃돼지(...)의 정체죠.
사실상 공주시의 마스코트 격이어서 시내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진묘수가 공주시의 마스코트라면 시의 대표 전통 문양을 차지하고 있는건 관꾸미개입니다.
신라 유물이 가지 모양의 금관으로 대표된다면 백제는 역시 이 불꽃 문양의 관꾸미개겠죠?

그 외에도 여러 중요한 유물들을 보고난 뒤 디지털 영상관에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무령왕릉이 만들어지고 세월이 지나 발굴되기까지의 과정을 인터렉티브 영상으로 만들었네요.

자 여기까지는 상설 전시관이었고, 오늘의 진짜 주인공은 여기 특별 전시관입니다.
아시다시피 1971년의 무령왕릉 발굴은 대한민국 고고학계 최고의 성과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최악의 결과이기도 했죠. 전국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기자들은 무조건 들이대고 학자들도
흥분한 나머지 지금같으면 몇 해에 걸쳐 조심스럽게 해야할 일을 이틀만에 죄다 쓸어담질 않나
보고를 받은 국가 최고지도자는 이게 순금이냐 확인한다며 유물을 구부렸다 폈다 하질 않나;;;

이러한 발굴 과정의 과오와 해프닝도 전시의 일부가 된 가운데(사진찍는걸 잊었습니다ㅠㅠ)
이번 특별 전시는 복원된 두 목관을 중심으로 상설 전시되지 않았던 나머지 유물들을 포함하여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5,232점이 모두 나오게 되었습니다.

가령 국보로 지정된 왕비의 베개와 발받침같은 경우는 온도 습도에 민감한 목재이다보니
상설 전시하기가 어려웠다는군요. 이번 50주년 전시에서도 왕과 왕비의 베개 및 발받침의
진품과 복원품을 주기적으로 번갈아가며 내놓는다고 합니다.

많은 유물들을 정신없이 보고 나오다 2층에 올라가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갔습니다.
어쩐지 저처럼 1층만 둘러보고 나오는 분이 왕왕 계실것도 같은데, 2층에도 전시가 있거든요.
백제 이전에도 또 이후에도 공주 지역에서 사람들은 계속 살아왔으니까요.

개중에는 통일신라 초기인 7세기 후반 백제 유민이 만들었다는 삼존 천불비상(국보)도 있고

깨진 토기 조각들을 깨진 모양 그대로 나열하여 전시하는 센스가 돋보이는 것도 있구요.

박물관 밖으로 나와 미처 안에 전시되지 못한 대형 석제 유물들을 지나 왼편으로 들어가면

말끔하게 세워진 새 건물, 충청권역 수장고가 나타납니다.

알고 온 건 아닌데 바로 며칠 전인 11월 29일에 개관했다네요. 이렇게 타이밍이 좋을 수가!

말 그대로 수장고, 즉 창고여서 뭐 얼마나 볼게 있겠나 했구만 의외로 보라는듯 만들었어요?

한쪽의 모형을 보니 건물 대부분이 유물을 보관한 수장고이나 중앙에 해당하는 블록을
통유리를 많이 쓰는 식으로 설계하여 외부 관람객들이 보기에 편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비록 박물관처럼 각 유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없지만 보관하고 있는 많은 유물의 일부나마
관람객들이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거죠.

박물관에 나오지 못하고 보관된 유물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이런 보관고가 대체 몇줄이야~

온도 습도 조절이 완벽한 수장고를 이렇게 잘 만들었다면 충분히 구경거리가 될 만합니다.
국립공주박물관에 가셨다면 그 옆의 충청권역 수장고도 꼭 찾아보세요~!

그리고는 나와서 밥도 먹고 다른 곳들 보다 공주 모든 유물들의 출발점 무령왕릉에 왔습니다.
전체 이름은 '송산리 고분군'이었으나 지난 가을부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바뀌었죠.

입장하면 고분 모양으로 만들어진 전시관을 먼저 둘러보게 됩니다.

대부분이 박물관에서 보았던 것들의 재탕(복원품)이지만 무령왕릉 발견 당시 유물들이 어떻게
놓여있었는지 알려주는 등 박물관과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도 꽤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제 들어갈 수 없는 왕릉 내부를 재현한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기도 하구요.
사진의 이곳은 무령왕릉이 아닌, 무령왕릉과 거의 똑같이 벽돌무덤으로 만들어진 송산리 6호분.
정황상 바로 전대인 동성왕이나 후대인 성왕 또는 성왕의 생모(무령왕의 후궁)의 묘로 추정되나
일제강점기 공주고등보통학교 교사인 가루베 지온(軽部慈恩)이 조사를 빙자한 도굴을 하여
현존하는 유물이 없습니다. 그때 무령왕릉이 발견되지 않고 남았던게 실로 천만 다행이죠.

이제 실제 왕릉들이 있는 그곳으로 올라갑니다. 백제의 왕릉은 신라의 그것처럼 큰 봉분을
가지지 않는데다 시간 속에 자연스레 묻혔지만 근래 정비하면서 좀더 도드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 켠에 있는 무령왕릉의 입구. 비교적 최근인 1997년까지도 관람객이 출입했다는게
믿기지 않는군요. 다른 이유이긴 하지만 애초에 개방 시설인 석굴암도 60년대에 밀폐되었거늘~

왕릉들 남쪽으로 공주 시내가 내려다 보입니다.
이 도시가 한 나라의 도읍이었던 그 때로부터 천 오백여 년의 시간이 지났네요.
어린 시절 초-중-고 세 번의 수학여행을 모두 경주로 다녀오면서 그 근방의 신라 유적지들은
생각 없는 발길이나마 한 번씩 스쳤던 반면 백제의 유적지를 마음먹고 제대로 돌아본 적이 없어
한참을 벼르다 드디어 원을 풀었습니다. 수도권에서 썩 먼 것도 아니고 까다로운 조건도 없는데
그 마음을 먹기가 왜이리 어려웠나 몰라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조만간 부여와 익산에도!!??
12월의 공주
덧글
발굴한지 50년 밖에 안 됐다고? 느낌이긴 하지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