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날씨가 차네요. 지난 12월 말, 올 겨울들어 가장 추웠던 때 다녀온 익산 여행 후기!
그 첫 번째는 국립익산박물관입니다.

2020년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은 특이하게도 기존의 외부 환경과 시야를 가리지 않기 위해
지하로 완만하게 파들어간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인즉...

박물관이 익산 시내가 아니라 북동쪽으로 10 킬로미터쯤 떨어진 미륵사지 바로 옆에 있거든요.
국립박물관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이었더랬습니다.

박물관에 입장하면 넓은 로비의 가운데에 9층 목탑의 대형 모형을 먼저 발견하게 됩니다.
미륵사지라고 하면 커다란 석탑을 떠올리게 되지만 두 석탑 사이에 더 큰 목탑이 있었다지요.

익산에는 백제 시기 공주(웅진)나 부여(사비)같은 도읍지는 아니어도 큰 도시가 있었다는걸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증명하고 있죠. 여러 정황상 조선 정조 때의 수원처럼 백제 무왕의
근거지였음은 확실하며 어쩌면 천도 계획까지 있었던 걸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무왕 사망 후
아들인 의자왕 대에 백제가 급거 멸망하면서;;

현재 국립익산박물관에는 백제시기 익산 지역의 중요 세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모두
모아놓고 있습니다.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극도로 정교한 사리장엄구라던가...

역시 같은 석탑에서 발견된 도금은제 금강경판같은 것들이 말그대로 눈이 돌아가게 만들죠.
이들 유물은 연구 결과 백제 시기보다는 훗날 통일신라 시기에 만들어진 유물로 추정됩니다.
유물 아래에는 제작 과정을 재연하여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습니다.

이외에 여러 불상이나 토우들의 조각들도 전시된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건 역시 이것?

익산의 중요 유적지 중 하나인 무왕릉도 재현되어 있는데, 너무 커서 사진에 안들어오네요.
사진 오른쪽은 봉분의 단면을 묘사한 것이고 왼쪽은 석실과 목관을 재현한 모형입니다.

실제로 형태가 남아있는 목관은 이 정도 뿐이지만 투명한 소재로 전체 형태를 보여주네요.
요즘 국내 박물관들의 기획이나 전시 수준이 확 올라갔다는걸 직접 체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립익산박물관의 진짜 주인공은 누가 뭐라해도 미륵사지겠죠.

고구려의 금강사, 신라의 황룡사와 함께 백제를 대표하는 미륵사는 서기 639년 무왕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황룡사에 비해 두 배나 넓은 광활한 부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물의 크기는
작은 편인데, 절의 이름처럼 세 번의 설법을 통해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 신앙에 기초하여
탑과 금당이 하나가 아닌 세 개씩 만들어졌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석탑이자 동양 최대(最大)의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
그러나 천 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며 무너져내렸고,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석탑은
일제강점기 보강한다며 콘크리트가 씌워진 기괴하고 안타까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었으나
1999년 국가문화재위원회가 해제보수정비를 결정하면서 기나긴 보수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덧씌워진 막대한 양의 콘크리트를 제거하는데만 대략 10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기존 석재와 닿은 부분는 치과용 드릴을 사용하여 조금씩 조금씩 일일이 떼어냈다고 하죠.
해체가 마무리되던 2009년경에는 사리병과 각종 유물들도 발견되었습니다.
크기와 문양, 공예 수준 등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의 백제 유물임은 바로 알아볼 수 있군요.

오는 2월까지 국립익산박물관에서는 "백제의 빛 미륵사 석등"이라는 특별전을 진행중입니다.

이제 석탑의 일부와 당간지주만이 남아있는 미륵사지에서 나머지 잔해들로 유추할 수 있는
것들 중 하나인 석등에 초점을 맞춘 특별전입니다.

깊게 파기에는 남아있는 요소가 부족하지만 요즘 시대에 맞춰 관람객의 흥미를 끌 수 있도록
재미있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가상 화면에서 직접 부재들을 골라 석등을 조립하게 한다던가
특정 장소에 올라서면 복원된 미륵사의 영상이 눈앞에 펼쳐진다던가~

이제 박물관을 나와 정말 미륵사지로 들어가 봅시다. 절터가 워낙 말도 안되게 넓다보니
빈 공간의 황량함이 더욱 배가되네요. 동쪽의 당간지주까지 같은 화면에 함께 담는건 포기;

익산 방문의 주인공 중의 진짜 주인공, 미륵사지 서쪽 석탑을 오늘에야 드디어 만납니다.
지난한 과정을 통해 해체한 뒤 부족한 자재를 엄선하고 균열을 보강하여 하나하나 다시 쌓아
복원하기까지 장장 20년의 시간이 소요되어 2019년 4월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복원 당시 원형을 따라 9층으로 할지, 남아있던 6층까지 할지 작지않은 논란이 있었다지만
우리가 아는 6층까지만 만들고 허물어졌던 부분을 겉으로 드러낸건 좋은 선택이었다 봅니다.
이렇게 한들 화강암 석재로 기존 목탑 양식을 표현한 아름다움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거니와
붕괴와 복원을 수 차례 반복했던 역사적인 의미까지 포함하게 되었으니까요.

절반 정도라도 형태가 남아있던 서탑과 달리 근현대 이전에 형체를 찾을수 없게된 동탑은
1990년대 초에 일찌감치 복원되었습니다. 그러나 탑의 구성이나 모양에 대한 자료가 전무한
상황에서 서탑과 똑같을 것이라는 희망섞인 가정 아래 현대의 기술로 다듬어 쌓아버린 결과
고증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최악의 사례로 남았죠. 지금은 그저 서탑이 원래 이런 모양이구나
하며 비교 참고하는 정도로나~

광활한 미륵사지를 한 바퀴 돌아보다 추위에 귀가 떨어져나갈것 같아 끝내기로 합니다.
연못 뒤 왼편이 국립익산박물관, 오른편은 어린이박물관이 된 옛 미륵사지유물전시관입니다.

이 드넓은 부지를 가득 채웠던 미륵사는 오래전에 사라지고 이제 상상의 영역으로 남았죠.
고대 국가에서 이 정도 규모의 대형 사찰 건립은 그 상상도 초월하는 권력과 재정이 소요될 터,
미륵사는 중흥기 백제의 국력을 증명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백제가 불과 20년 뒤 멸망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달려와 강추위 속에 오들오들 떨며 구경했으므로 주린 배를 채우러 갑니다.
미륵사지는 익산 시내는 물론 금마면 읍내로부터도 꽤 떨어져있으므로 근처에 뭐가 잘 없죠.
읍내로 나가는 길목의 '익산 돈가스'가 유명하다길래 입장! 아마도 제가 그날의 첫 손님??

찾아보니 성수기에 예약하지 않았다가 헛걸음했다는 후기가 많은 익산 맛집이라네요.
근래 유행(?)하는 덩어리(??) 스타일에 치즈를 가미한 돈가스입니다. 맛도 딱 비주얼대로.
이제 익산의 남은 백제 유적지 두 곳, 왕궁리 유적과 쌍릉으로 갑니다~
한겨울의 익산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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