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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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가 성을 뛰쳐나간 까닭은 by glasmoon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연예인과 셀럽들을 비롯한
이른바 공인(公人)들의 공공연한 고민에 대해 대다수의 대중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그런걸 세상이 다 아는데도 스스로 선택한 직업이니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지 어쩌겠냐고.
하지만 개중에는 드물게 직업적 선택과 소소한 고민에서 다소 벗어난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이를테면 왕실에 결혼하여 대중의 우상이 되었지만 바닥없는 수렁에 빠져버린 어떤 여성처럼.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등 근래 만들어진 전기 영화들의 유행(?)을 따라 이 영화 또한
다이애나 스펜서의 삶 전반을 훑는 대신 그녀의 극적인 결심이 1991년 겨울에 있었다 가정하고
그해 크리스마스 전후의 사흘간 노퍽의 샌드링엄 별장에서 있었던 왕실 성탄 휴가를 추적한다.
수행원 없이 홀로 직접 운전하여 별장을 찾아가는 길은 그녀의 내면만큼 황량하고 혼란스럽다.


이 영화를 보러온 이라면 왕실에서의 삶이 어떠했는지 대충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듯
아무런 설명 없이 다짜고짜 히스테리 게이지 만땅으로 급발진하는 그녀의 위태로운 행동들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힘의 8할은 온전히 주연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라 하겠다.
그러나 다들 추측하는 모호한 현실의 베일을 걷어보면 영화적인 묘사는 더더욱 모호할 뿐이어서
여왕은 현명하고 다른 왕족들은 기품있으며 그외 수행원들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녀를 응원하니
오로지 미화 불가능의 답없는(?) 찰스 왕자만이 욕받이가 되어 홀로 악역을 자처하는 셈.

게다가 아무리 인기가 바닥을 뚫고 내려가는 찰스라도 혼자서는 동기 부여에 역부족이었던지
뜬금없이 500년 전의 앤 불린을 불러오는데 이르면 머릿속은 급거 혼돈의 카오스로 빠져든다.
왕(권력자)의 불륜 행각에 희생된 여성이라는 걸 제외하면 둘 사이에 어떠한 공통점이 있었나?
아니 애초에 앤 불린이 여기서 깜짝 튀어나와도 될만큼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거였어??


그리하여 그 당시의 정황상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었던 이야기는 순식간에 픽션이 되어버리고
왕가 이전에 한 집안의 불행했던 가정사는 어느덧 여성 해방 비슷하게 전환되니 이야말로 뭥미.
"우리는 모두 (찰스만 빼고) 그녀를 정말 사랑했답니다. 이후 그녀는 왕실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고 행복하게 살았지요. 물론 얼마못가 파파라치에 시달리다 사고로 죽었지만."

코로나 시대에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여왕 폐하를 비롯하야 적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건 알겠으되
사건의 원인에 대해 지나치게 모호한 태도, 공백을 메우려 소환된 뜬금없는 인물과 상징성 부여,
그리고 중간중간 비약(의도적 공백)이 많아 사실적인 전기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던 영화.
그렇다고 여성 서사가 잘 채워졌냐면 실화를 핑계로 관객의 상상에 맡기고 표면에 몰두했으니
복잡한 표정을 재연한 크리스틴의 연기와 스크린에 재현된 다이애나 패션 화보는 볼만했던 걸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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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두드리자 2022/03/31 20:55 # 삭제 답글

    찰스 혼자 악역을 맡을 필요는 없을 텐데요? 카밀라라던가, 파커라던가, 보울스라던가. 영국 왕실을 멸망시킬 악역으로 적합한 그 사람은?
  • rumic71 2022/03/31 22:12 #

    결국은 강제 결혼을 시킨 폐하가 문제입니다. 왕실이 그런 거긴 하지만...
  • glasmoon 2022/04/01 20:05 #

    잠깐 얼굴을 비추긴 합니다. 아주 자암깐이지만.
  • f2p cat 2022/03/31 22:22 # 삭제 답글

    그냥 뭐랄까 연기의 궤적만은 좋았던 겉담배 같은 영화였달지..
  • glasmoon 2022/04/01 20:14 #

    근데 또 배우신 분들의 평은 좋더라구요.
    작년 "프라미싱 영 우먼"도 제대로 어이털린 영화였는데 아카데미에서 감독상 작품상 후보까지 오르는걸 보고 허허~
    올해 작품상 받은 "코다"도, 물론 "스펜서"나 "프라미싱..."보다야 훨 나았지만, 그렇게 대단했나? 자문한다면 그을쎄요.
  • Ryunan 2022/04/01 09:36 # 답글

    찰스야 계승권도 잡고 애인도 잡고 싶어했던 욕심의 대가를 최장기 대기로 갚고 있다지만
    저 여왕의 노욕은 어떻게 될런지 모르겠네요.
  • glasmoon 2022/04/01 20:21 #

    정말 루이 14세의 최장기 재위 기록에 욕심이 있으신겐지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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