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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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 풍경과 야경 by glasmoon



네덜란드의 중심 암스테르담에서 이어지는 미술관 구경, 이번에는 국립미술관입니다.
4년 전 어느 새벽 중앙역에서 여기까지 걸어와 바깥 구경만 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봅니다!
혹 암스테르담 다녀오신 분 중에 이 국립미술관과 암스테르담 중앙역이 닮았다고 느낀 분이
계시다면 정답입니다. 두 건물의 설계자가 피에르 쿠이퍼스(Pierre Cuypers)로 같거든요.



Rijks Museum(레이크스 뮤제엄)이라는 이름에서 Rijks가 Royal이라는 뜻이니까 정확히는
네덜란드 왕립미술관이겠지만 어째서인지 국내에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으로 알려졌습니다.
본래 덴하흐(헤이그)에 있다가 암스테르담으로 옮겨왔고 현재의 건물은 1885년 개관했죠.



암스테르담 중앙역도 마찬가지지만 고딕과 르네상스가 조합된 건물이 너무나 화려한 나머지
이따금 궁전이나 성당으로 쓰던 건물을 바꾼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는데 그런건 아니구요,
쿠이퍼스 본인이 본디 교회 건축을 많이 다룬 사람이어서 그런 느낌을 왕왕 받는 모양입니다.



다른 서양 미술관들과 마찬가지로 레이크스의 갤러리 또한 중세의 성화들로 시작하게 되는데
도식화된 그 시절의 성화들 중 유달리 눈에 띄는 그림이 하나 있네요. 게르트헨 토트 신트 얀스
(Geertgen tot Sint Jans)의 "성스러운 친족(Heilige Maagschap)". 말기라고는 해도 엄연한
중세 회화거늘 산뜻한(?) 색상과 단순화된 그림체(?)가 다소 어긋난 원근법과 맞물려 마치
현대에 그려진 그림처럼 보입니다. 네덜란드 회화의 독특함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된 건지도?



프랑크 왕국이나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가 아닌 네덜란드의 역사가 시작되는 대 전환점을 만든
빌럼 판 오라녜(Willem van Oranje)를 아드리안 토마스 키(Adriaen Thomasz Key)가 그려
널리 알려진 초상화도 이곳에 있습니다. 정치와 종교가 맞물려 벌어진 네덜란드 독립전쟁 이후
가톨릭으로부터 칼뱅파 개신교로 바뀌면서 네덜란드의 예술, 특히 회화는 크게 바뀌게 됩니다.



칼뱅파가 주도한 성상 파괴의 광풍이 지나간 뒤 네덜란드에서 전통적인 종교화는 금기시되어
회화의 주제는 초상화와 함께 정물화, 풍속화, 그리고 풍경화로 자연스럽게 전환되었습니다.
헨드릭 아베르캄프(Hendrick Avercamp)의 "스케이트를 타는 겨울 풍경(Winterlandschap
met ijsvermaak)"처럼 풍속화와 풍경화가 합쳐진 양식은 매우 재미있는 그림들을 탄생시켰죠.
폼나게 타는 사람부터 넘어진 사람, 먹는 사람, 싸는 사람들까지 하나하나 찾아보는 재미가~



유럽 미술사에서 풍경화는 철저한 비주류이건만 (윌리엄 터너도 주류 바깥의 영국 한정이죠)
네덜란드의 이러한 여건은 다양한 풍경화를 발전시키며 다시 하위 장르를 만들어냈습니다.
앞서 아베르캄프가 하얀 겨울 풍경이 전문이었다면 아르트 판데르네르(Aert van der Neer)는
겨울과 함께 달빛이나 새벽 어스름처럼 희미한 빛만 있는 어두운 야경을 전문적으로 그렸죠.
이 "달빛 아래의 강 풍경(Riviergezicht bij maanlicht)"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 중 하나인데
워낙 어두운 그림이어서 그런가 사진으로는 실제 그림의 감흥이 반의 반도 담기지 못하네요;



제가 워낙 성당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다보니 여러 성당들, 특히 내부의 인테리어를 주로 그린
피터르 얀스 산레담(Pieter Jansz. Saenredam)의 그림에는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남아있는 그림이 몇 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초상, 풍속은 물론 풍경까지 두루 능숙했던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대표작들도 이곳 국립미술관에 있습니다마는
정물과 인물을 합친 "우유를 따르는 여인(Het melkmeisje)"는 부재중이어서 아쉽아쉽~



"진주 귀고리 소녀"와 함께 그의 대표작인 "델프트 전경(Gezicht op Delft)"은 이곳이 아닌
덴하흐(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에서 먼저 보았지만 이제사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게 되었죠.



암스테르담의 운하를 그린 헤리트 베르크헤이데(Gerrit Berckheyde)의 그림도 꽤나 유명한데
제가 촬영을 빼먹은건지 정리하면서 실수로 지운건지 아무튼 남아있지 않아서 빌려왔구요;



이렇게 16~17세기의 황금기에 시작되고 확립된 네덜란드 풍경화의 전통은
(야콥 판 루이스달(Jacob van Ruisdael), "비지크 비즈 두르스테데의 풍차(De molen bij Wijk bij Duurstede)")



현대 미술에 가까워지는 19세기의 헤이그 학파(Haagse School)와 그 이후까지도 이어집니다.
(폴 가브리엘(Paul Gabriël), "폴더 수로의 풍차(Een molen aan een poldervaart)")



어쩌다보니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의 그 많은 그림들 중 풍경화에 집중하여 보게 되었지만
사실 이 미술관, 아니 네덜란드 미술의 확고부동한 최고 스타는 역시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죠. 렘브란트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의 많은 자화상들(의 일부)을 실제로 한 자리에서 직접 보는 감흥은 남다릅니다.
젊은 날에도 늙은 날에도 한결같이 빛과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의미도 느낌도 전혀 다르죠.



자화상을 포함하여 나이를 먹어갈수록 삶의 무게에 짓눌린 얼굴을 그리게 되는 렘브란트지만
자식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티투스(Titus van Rijn)를 모델로 한 그림만큼은 달랐습니다.
제가 렘브란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수도복을 입은 티투스(Titus als monnik)"의
온화한 표정은 정말이지 성인 그 자체이죠. 아내에 이어 이렇게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들마저
불과 스물 여섯의 나이로 죽었을 때 렘브란트의 삶의 의지는 완전히 소진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는 한 해 뒤 아들의 뒤를 따랐죠.



거의 한 세기에 걸쳐 수 차례의 테러를 당한 뒤 2019년 여름부터 기나긴 복원에 들어갔던
렘브란트를 대표하는 걸작 중의 걸작 "야경(De Nachtwacht)"은 다행히 볼 수 있었습니다.
마우리츠하위스에서 먼저 보았던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De anatomische les
van Dr Nicolaes Tulp)"가 짐작보다 다소 작았다면 이건 생각보다도 어마어마한 크기로군요.
원래는 낮 장면인데 워낙 어둡게 그려진데다 붉은 안료까지 변색되어 제목에 밤이 붙었다던가,
그림이 워낙 큰 나머지 걸려있던 장소가 몇 차례 옮겨지는 와중에 일부가 잘려나갔다던가,
발주한 민병대가 무척 불쾌해했고 렘브란트는 몰락하여 비참하게 죽었다는 썰은 과장이라던가
...하는 이야기는 다들 아실테니 생략하죠.
아무튼 결혼식 단체 사진처럼 뻔한 단체 초상화를 역사화처럼 극적으로 묘사한건 대단하지만
아무리 애틋하다해도 의뢰받아 그린 그림 한가운데에 죽은 아내를 그려넣은건 좀 너무했..나??



이런 대작을 보고난 뒤엔 다소 현타가 오게 마련입니다마는 국립미술관에서 가장 큰 그림은
사실 얀 빌럼 피너만(Jan Willem Pieneman)의 "워털루 전투(De Slag bij Waterloo)"입니다.
"야경"이 대략 4.5 x 3.5 미터라면 "워털루 전투"는 대략 8 x 5.5 미터 쯤 되니까요.
당시 유럽의 워털루 관련 기록화들은 워낙 크기 기록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했으니 그러려니~



이후 19세기의 반 고흐는 활동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한데다 네덜란드에 남은 그의 작품들은
반 고흐 미술관에 따로 모여있으므로 다음 포스팅으로 넘기고, 암스테르담 인상파에 속하는
헤오르허 헨드릭 브라이트너(George Hendrik Breitner)의 그림들이 있고...



고전적인 주제와 분위기를 넘어 클림트와 크노프 등 아르누보에까지 영향을 미친걸로 보이는
로렌스 알마 타데마(Lawrence Alma-Tadema)의 화려하고 낭만적인 그림들도 있고...
크노프는 나중에 벨기에에서 다시 만나게 되겠네요.



이미 지쳐서 이후의 그림들은 쭉 스쳐보기만 하다가 색상 발랄한 현대 회화 한 장 찍었습니다.
카렐 아펠(Karel Appel)의 "사각 인간(De vierkante man)".



회화가 주류이긴 해도 조각이나 여러 공예품들도 많이 소장하고 있건만 역시 잘 모르다보니.
그나마 흥미를 잡아끄는건 왕년 어느 귀족 저택 또는 부잣집에 있었을 초호화판 인형의 집?



연구동 일부도 관람객들이 볼 수 있게 되어있네요. 오픈이 추세라지만 적잖이 방해도 될텐데~



황금기 풍경화들과 렘브란트의 명화들 몇 점에 집중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이었습니다.
소장 작품들이 방대한 한 나라의 국립 미술관 급을 관람할 때 나름대로의 기준을 잡지 않으면
소화 불량이 온다는걸 몇 번 체한 뒤에야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가 쉽진 않네요.
남은 미술관이 아직 한참인데 우짜냐~~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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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두드리자 2022/07/08 00:59 # 삭제 답글

    전시장이 너무 크면 대충대충 보게 되더군요.
  • glasmoon 2022/07/08 18:09 #

    한번에 다 본다는 생각을 버리는게 좋죠. 그러나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선택지가 없고..ㅠㅠ
  • 잠본이 2022/07/08 08:40 # 답글

    일부만 봐도 방대한 규모가 팍팍 느껴지는...
  • glasmoon 2022/07/08 18:10 #

    뭐 루브르나 대영보다는 아담한(?) 편이긴 합니다?
  • 잠본이 2022/07/11 12:04 #

    뭐 걔네들이야 남의 동네에서 훔쳐온걸로 몸집을 불렸으니 그럴수 밖에 없겠죠(...)
  • glasmoon 2022/07/11 20:43 #

    실은 여기의 그림들도 프랑스가 나폴레옹 전쟁때 한번 먹었다가 뱉어낸게 상당수라고(...)
  • 잠본이 2022/07/13 10:09 #

    미술관별 컬렉션이 어디서 생성되어 어떻게 모이고 이동했는지 살펴보면 흥미로운 학문 하나 나올듯 하군요...
  • 노타입 2022/07/20 08:31 # 답글

    세상에나 네덜란드를 다녀오셨군요. 포스팅을 보자면 6월중에 다녀오신듯 한데 저도 마침 7월 둘째주에 다녀왔습니다. 심지어 댄하그의 마우리츠하위스나 왕립미술관등 겹치는 동선이 많았네요. 시간이 안맞았지만 조금만 시공간이 뒤틀렸다면 유리달님을 직접 만나고 방대한 지식의 강의를 들으며 몇배로 즐길수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하이네켄이나 유명교회들은 사실 못갔는데 대신 댄하그에서 차로 달려서 벨기에 안트워프에서 플란다스의 개의 네로가 죽으며 그렇게 보고싶어했던 루벤스의 그림들을 보고 왔습니다. 플란다스의 개를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예습삼아 유튜브에 있는 1시간 반짜리 요약판을 보여줬는데 어떻게 어린 주인공에게 저렇게 가혹하냐며 어찌나 화를 내던지... ^^;
  • glasmoon 2022/08/10 15:43 #

    으악 덧글 남겨주신걸 이제야 봤네요! 저는 5월 말에 가서 6월 첫째 주에 있었습니다. 와, 마주쳐도 몰라봤겠지만, 그래도 같은 공간에서 한국어 쓰는사람 만나면 반가워서 인사했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아쉬울 수가~ 암스테르담 외 지역에서는 한국인 거의 못본것 같아요. 전 이번에 일정이 무지막지해서 로테르담 찍고 안트베르펜(앤트워프) 찍고 브뤼허까지 들렀다가 브뤼셀로 아웃했습니다. 체류 기간은 열흘이 안되는데 뒷정리 하는데 몇 달이 걸리려는지 원;;;
  • 노타입 2022/07/20 08:47 # 답글

    렘브란트의 야경을 처음 알게된건 초등학교때 누군가 선물했던 1000피스짜리 퍼즐이었습니다. 근데 죄다 컴컴하니 이걸 대체 퍼즐을 어떻게 맞추냐며 짜증냈던 기억만 있네요 ㅎㅎ 저도 이번에 직접 보게되었는데 전경의 인물이 거의 실제 인물사이즈로 엄청난 사이즈라 압도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주변의 다른 민병대 그림들이대조적으로 딱 원 의뢰인들이 원했을 '단체사진' 느낌이라 야경의 개성이 더 두드러지더군요. 아 참고로 제가 갔던 7월 12일엔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보러 한번 또 가셔야죠 ㅎㅎ
  • glasmoon 2022/08/10 15:46 #

    저도 '크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도 직접 가서 보니 등신대 사이즈에 압도당하더라구요. 예전에는 대체 이게 그렇게 칭송받을만한 그림이야? 싶었구만 실물의 포스 앞에서 그냥 깨갱;; 그나저나 저는 정말 간발의 차로 우유 따르는 여인을 보지 못한 거네요. 오호 통재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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