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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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다락방 속의 주님 by glasmoon


앞서 구교회와 신교회에서 말씀드린대로 16세기 후반 정치와 종교에 개혁의 바람이 휩쓸면서
독립된 신생 네덜란드 공화국은 로마 가톨릭이 아닌 칼뱅파 개신교 국가로 태어납니다.
개종하지 않은 천주교 신자들의 일부는 독립하지 않은 남부 지역(현 벨기에)으로 내려갔지만
각자의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떠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았죠. 네덜란드 공화국 정부는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되 공개적인 장소에서 가톨릭 교도의 종교 활동(즉 미사)를 금지했습니다.



구교회 뒤의 운하를 따라 100 미터 정도 올라가면 "Ons' Live Heer op Solder" 라는 이름을 단
작은 박물관이 보입니다. 영어로 "Our Lord in the Attic"니까 우리말로 "다락방 속의 주님" 정도?
보통 '암스테르담의 다락방 교회' 혹은 '암스테르담의 숨겨진 교회'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더군요.
깔끔한 신식 건물은 관리동이고 실제 교회 건물은 1층에 보수용 장막을 두른 왼쪽 건물이죠.



1888년부터 시작되는 박물관의 역사는 국립미술관에 이어 암스테르담에서 두 번째로 길며
대대적으로 손질한 2015년부터 오른편 건물로부터 지하를 통해 왼편 건물로 들어오게 됩니다.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매년 약 1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암스테르담의 대표 명소라는군요.



1661년 대로변의 집과 뒤의 집 두 채를 모두 구입한 부유한 상인 얀 하르트만(Jan Hartman)은
세 집의 윗부분을 트고 연결하여 미사 공간, 즉 작은 성당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가정집 위에 성당이 얹힌 셈이죠.



집값 비싼 암스테르담에서 세 집을 합쳐 1만 6천 길더였다니 쉽게 16억 원(...) 정도로 추정되나
입구를 비롯한 내부는 역시나 작고 좁습니다. 아닌게아니라 네덜란드의 옛 주택에 들어가볼
일이 없는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서는 이쪽의 경험도 성당(교회)만큼이나 중요하겠네요.



1층은 주택의 서비스 레벨 격으로 주방과 세탁질, 하인들의 생활 공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네덜란드 특유의 좁고 가파른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2층과 3층을 터서 천장을 높인 하르트만 저택의 화려한 응접실이 나타납니다.
걸려있는 장식과 그림들이 그 시절 그대로는 아니겠지만 규모를 볼 때 못하지도 않았을 듯?



방에는 간단한 개인 사물들과 함께 추위를 피하기 위해 벽장 모양이 된 옛 침상이 있구요.
침상의 내부가 매우 좁은데 당시 사람들의 체격이 지금보다 작기도 했던데다 웅크리고 자는게
건강에 좋다고 여겼다나 하는 카더라를 들은 기억이 나네요. 추워서 자연스럽게 그랬을지도?



그리고 다시 4층으로 오르면 드디어 성전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그럴듯 하군요.
4층과 5층, 다락층을 틔워 천정이 높으며 5층과 다락층의 일부를 남겨 회랑으로 삼았습니다.



좁은 공간에도 불구하고 성전의 핵심인 제대 주위는 매우 공들여서 만들어져 있습니다.
뒤의 제단화는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네덜란드 화가 야콥 더빗(Jacob de Wit)이 그린 것.



세 집의 세 층을 하나로 합쳤으니 집들의 껍데기, 즉 외벽만으로 구조를 버티고 있다는 얘긴데
아마 지금같으면 씨알도 안먹힐 터무니없는 구조변경이겠죠?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대로에 접한
너비에 따라 세금을 매겼으므로 집들의 폭이 좁았기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대 반대편으로는 그럴듯한 파이프 오르간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구요.



제대 왼편의 창문으로 바깥을 보니 겹겹이 늘어선 지붕들 뒤로 구교회의 종탑이 보입니다.
얼마 전까지 미사를 드리던 성당을 멀리서 보아야만 하는 심정이란 매우 복잡했겠죠.
이 다락방 성당도 성 니콜라스에게 봉헌되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구교회의 후신이기도?



5층과 다락층의 일부를 남겨 만든 회랑은 물론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략 백 오십 명 정도가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지만 18세기에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부근의 더 큰 건물로 옮겨가고자 했으나 개신교측의 신고와 항의로 실행되지는 못했습니다.



건물의 뒤쪽, 그러니까 대로 반대편의 안쪽은 성당으로서의 부대 시설이 차지합니다.
물론 성모상(성모자상)이 있어야겠죠?



당시에 사용된 미사 제구들도 보관되어 있구요.



역시 성당에서 빠질 수 없는 고해실도 있고



그 아래층은 사제의 거주 공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또한 엄연한 사제관이라 하겠군요.



그리고 맨 아래층, 사제의 살림을 위한 설비들을 마지막으로 성당 투어가 끝납니다.



구교회가 전환되고부터 275년이 지난 1853년에 이르러 가톨릭에 대한 금지 조치가 해제되자
바로 위에 큰 성당을 세웠으니 성 니콜라스 대성당(Basiliek van de Heilige Nicolaas)입니다.
옛 성당(구교회), 다락방 성당에 이은 암스테르담의 삼 대째 성 니콜라스 성당이죠.



이미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암스테르담의 구시가지에 넉넉한 부지가 있을 리 만무하므로
건물들 사이로 여느 집들과 함께 앞뒤로 운하를 끼고 외부 정원 없이 위로만 올라가 있습니다.
성당을 주로 작업한 네덜란드 건축가 아드리아누스 블레이즈(Adrianus Bleijs)가 설계했죠.



당시 성당 건축의 주류였던 네오 바로크에 네오 르네상스를 가미한 절충적인 양식을 가지며
공간을 비롯한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있었던양 매우 기품있고 당당한 모습입니다.
전면 상단에 올려진 성 니콜라스(니콜라오) 조각상은 바르트 판호버(Bart van Hove)의 작품.



스키폴 공항을 거쳐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내리면 바로 보이므로 관광객이 가장 먼저 보는
건물 중 하나가 됩니다. 부지는 좁지만 운하의 가장 폭이 넓은 구간을 안뜰로 가진 셈이죠.
내부도 보았으면 좋았을텐데 개방 시간이 길지않아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닫힌 뒤였던 터라. ㅠㅠ

여기까지 암스테르담 성당(교회)들의 답사를 빌미로 훑어본 네덜란드 기독교의 역사였습니다.
그 뒤로는 어찌됐는고 하니, 천주교는 다시 교세를 넓히는 반면 개신교는 반대로 쪼그라들어
입장이 역전되었다가 2차대전 이후로는 무종교 비율이 대폭 늘어나면서 2020년 기준으로는
무종교가 과반, 천주교 약 20%, 개신교 약 15%, 이슬람교 약 5%, 외 기타 정도라고 합니다.
이를 보면 대체 16세기에 무엇때문에 신구교가 그토록 싸워댔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요. ^^;


암스테르담 구교회와 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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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 세 채를 매입하고 그 윗부분을 틔워 연결해서 만든 다락방 성당 (Ons' Live Heer op Solder)입니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소 중 하나였지요. 암스테르담 다락방 속의 주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약 300년 동안 이어졌던 천주교에 대한 차별 정책이 해제되자 성 니콜라스 대성당(Basiliek van de Heilige Nicolaas ... more

덧글

  • 도그람 2022/07/19 23:13 # 삭제 답글

    종교의 계보가 정말 복잡하긴해요ㅎㅎ
  • glasmoon 2022/07/20 20:05 #

    국경 건너 독일로 가면 여기에 루터파도 끼겠죠? 흐흣
  • 잠본이 2022/07/20 08:56 # 답글

    지상 던전을 거슬러 올라가니 교회가 뙇!
    저 동네 사람들 공간활용 기술은 놀랍군요.
  • glasmoon 2022/07/20 20:07 #

    워낙 집값이 비싸고 공간이 좁으니 접이식 거시기 수납식 머시기같은게 발달할 수밖에 없겠더라구요.
  • Ryunan 2022/07/20 11:16 # 답글

    나중에 끼어든 것임에도 가장 먼저 자리 잡은 것 같은 느낌이 대단하네요. 여러채를 묶어서라도 성당을 만들어낸 집념도 엄청나고 ㅎ
  • glasmoon 2022/07/20 20:09 #

    당시 암스테르담 시가 원상복구 시킬만큼 꽉 막힌 집단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비슷한 사례가 더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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