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스테르담의 미술관들 포스팅을 다 했겠다 시내 구경 사진들을 한참 정리하다보니
하나 빼먹은걸 뒤늦게 알아챘네요.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의 집,
렘브란트 하우스(렘브란트하위스, Rembrandthuis) 박물관입니다.

렘브란트의 이야기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과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조금씩 한데다
워낙 유명하기도 하므로 대충 얼버무리고(...), 렘브란트가 이 건물을 구입한건 1639년으로
그의 커리어가 정점으로 치달을 33살 무렵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암스테르담인데다 덩치도 커서 가격은 1만 3천 길더, 현재 한화로는 대략 13억 원쯤 된다네요.

렘브란트의 전성기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마우리츠하위스에서 먼저 보았던 "해부학 강의
(De anatomische les van Dr Nicolaes Tulp)"가 1632년작이니 이 무렵 렘브란트의 자신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또 대중적으로 얼마나 잘 팔리는 화가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건물은 렘브란트 이후 수 세기 동안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적지않은 변경과 손상을 입어오다
1906년 렘브란트 탄생 300주년을 맞아 암스테르담 시에서 매입, 렘브란트 재단에 기부하였고
복원 공사를 거쳐 1911년 렘브란트 하우스 박물관(Museum Het Rembrandthuis)이 되었습니다.

입구에 건물의 내부 모형이 있네요. 알아보기 쉽도록 절반 정도만 재현한 것이긴 하지만
반지하층의 관리 공간, 1층의 응접실과 침실, 2층과 3층의 작업실 등등의 구조가 보입니다.

관광객들에게는 잘 복원된 17세기 암스테르담의 주택을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긴 한데
저는 전날 다락방 성당에서 이미 경험한데다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않아 대충 훑었습니다;;
아 마주보는 벽에 격자 창살이 쳐진 녹색의 작은 창문이 뭔가 싶어 들여다봤더니...
암스테르담 다락방 속의 주님

창문 건너편에 매우 작은 방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진의 책상 오른쪽이 창문)
그러니까 그림의 대금이라던가 등등의 이유로 금전을 출납하던 금고실(?)이었던 셈이죠.
점포도 아니고 개인 주택의 응접실 한쪽에 이런 방을 만드는게 당시 흔한 일이었는지 어떤지
저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이재에 밝은 네덜란드 사람답달까 그만큼 렘브란트가 잘나갔달까~

응접실과 침실 벽을 메우고 있는 그림들은 대부분 동시기의 다른 작가나 제자들의 것입니다.
렘브란트의 진품들은 대부분 미술관에 가있죠. 물론 저 그림들도 모두 훌륭한 작품들일테고
음성 가이드가 해설하는 작품도 많은데 하나하나 다 들을 시간은 없고... 뭐 그랬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작업 공간으로 들어갈 차례인데, 뒤쪽에 골방(?)이 하나 있네요?
어두컴컴한 밀실, 타일 바닥에 투박한 의자같은 기구, 게다가 기구에 달린 십자 모양의 틀까지
여기는 설마 고문실?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정부 뒤에서 암약하던 비밀결사의 일원이었나??
...물론 그럴 리는 없구요. 동판화(에칭, etching)를 찍어내는 작업실이었습니다.

회화가 워낙 독보적으로 알려져서 그렇지 렘브란트는 또한 유명한 판화 작가이기도 했거든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익히 기억하실 이 자화상을 포함해서 말이죠.

렘브란트 하우스 박물관은 렘브란트가 찍어낸 동판화의 거의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는데다
원본 동판도 다수 확보하고 있습니다. 와 거장이 작업한 판화 원판이라니 이건 귀한 거로군요!

3층의 한쪽 끝은 거대한 수집실입니다. 아마 대다수는 남겨진 기록을 토대로 재현한 거겠지만
집안을 가득 채운 그림을 비롯한 예술품들, 그리기 위한 소품들, 그를 빙자한 각종 사치품들을
무분별하게 사모았던 것이 렘브란트가 끝내 파산한 원인 중 하나였음은 명백합니다.

이제 박물관 투어의 마지막이자 핵심인 화가의 아틀리에를 볼 차례로군요.
한쪽 책상에는 물감(안료)의 원료들과 그것으로 만들어낸 당시의 물감이 놓여져 있습니다.
옛 화가들을 다루는 영화에서 이따금 묘사되는 것처럼 그때는 그림을 그리는 것 뿐만 아니라
그림을 위한 물감을 만드는 것도 화가(와 그 조수)의 중요한 일 중 하나였죠.

그렇게 만든 물감을 가지고 렘브란트는 여기에서 우리가 아는 작품들을 그려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완벽한 저택에서의 작품 활동은 화가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았으니...

렘브란트의 최고 걸작이자 경력의 변곡점으로 꼽히는 이 "야경(De Nachtwacht)"이 1642년에
완성되었으니 집을 구입하고 채 몇 년이 못되어 대중적인 화가로서의 전성기는 끝나버립니다.
유명해질대로 유명해진 화가는 의뢰인들의 요구가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탐색에 더 몰두했고
위에서 이미 이야기한대로 작품 활동을 위한다며 온갖 예술품들과 사치품들을 사모았으며
무엇보다 20년 가까이 지나도록 이 호화 저택 대금의 절반 이상이 잔금으로 남아있었죠.
그 결과 1656년 렘브란트는 결국 파산하고 이 집도 수집품들과 함께 경매에 부쳐졌습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 풍경과 야경
역사에서 왕왕 보는, 성공의 증명이었던 것이 몰락의 단초가 되는 아이러니함의 한 예랄까.
아내 사스키아와의 결혼 및 사별을 포함하여, 성공 가도를 달려왔던 삶에서 이러한 큰 굴곡이
예술적인 깊이를 더한 것인지 그 뒤로 유명한 자화상들을 포함한 많은 걸작들을 만들어내지만
대중적 기호와의 괴리는 더욱 커졌고, 두 번째 아내 헨드리키와 아들 티투스를 차례로 잃은 뒤
1669년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예에... 그냥 이런게 있습니다 정도로 하려했구만 또 다들 아시는 작가의 후반생을 읊었네요.
다음 번은 정말 그림 말고 암스테르담 구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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