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 올리는걸 완전히 잊고 있었네요. 지난 8월 중순, 어떤 더운 날의 리움 미술관입니다.

너무 유명해서 설명이 필요할까 싶지만, 집안의 성인 리(LEE)와 박물관의 움(museUM)을 따
만들어진 리움 미술관은 이름 그대로 이병철과 이건희 2대에 걸쳐 삼성가가 사모은 미술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여기 전시된 것도 전체에서 볼 때 빙산의 일각이었지만요.
2000년대 초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건물 건축 설계도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에게 발주하여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라는 세 거장의 건물이 한 대 모인 대단히 드문 예가 되었죠.
그 세 건물이 서로 어울리느냐 하는건 별개이지만;; 아 뒤에 높은건 그랜드 하얏트 호텔입니다~

고미술을 전시하는 붉은 벽돌의 정갈한 M1관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검은 철판의 아방가르드한 M2관은 장 누벨(Jean Nouvel)이,

투명하고 화려한 아동교육문화센터는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각기 맡아 설계했죠.

오랜만에 그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리움 미술관은 홍라희 관장이 2017년 사임하면서 활동이 위축된데다 코로나19 확산이 겹쳐
아예 휴관했다가 작년 가을 재개관했습니다. 워낙 오랜만이라 얼만큼 바뀐건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재가 갔을 때는 무언가를 준비한다고 M2관이 또 휴관하여 볼 수 있는건 M1관 뿐;;;
뭐 어차피 이번에는 고미술품 보러 온거니 그걸로 만족합시다?

국내에 새로 지어진 미술관 전용 건물들은 참 원형 램프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이따금 하는데
리움의 M1관도 맨 위층으로 올라간 뒤 한 층씩 보며 원형 계단으로 내려오는 방식입니다.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원형 램프가 많이 쓰였을까요? 흐음~

4개 층으로 이루어진 M1관 관람은 고려 청자를 모아 전시한 4층부터 시작합니다.
첫머리부터 국보인 청자 동채연화문 표형주자가 방문객의 기세를 누르는군요?
문양과 색상은 물론이거니와 가느다란 목 앞의 동자, 손잡이 위의 개구리까지 대체 뭘 한건지~

한쪽 방에는 작은 찻잔들을 따로 모아 이렇게 멋드러지게 전시하였습니다.
부여의 정림사지 박물관에서 비슷하게 전시된 유물을 보았는데 요즘 이런게 유행인가 봅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고려청자의 이미지로 각인된 국보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을 그대로 빼닮은
청자 상감운학모란국화문 매병도 있구요.

3층은 분청사기와 백자들이 자리를 채웁니다...마는 골동품과 도자기에 별 관심도 조예도 없는
저로서는 분청사기의 매력을 전혀 몰랐는데 이번에 보니 좀 다르네요? 나이를 먹어 그런가??

전시실 한가운데 각양각색의 백자 연적들이 십 수개 모여있길래 귀여워서 한 장.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저같은 사람도 도자기 하면 백자부터 떠올리는게 보통이죠.
저도 나이를 좀 더 먹으면 집에 도자기 한두 점 쯤 두게 될라나.. 설마...

2층에서 보게되는 회화와 글씨들 중에 제가 먼저 앞에 선 것은 환어행렬도(還御行列圖).
화성 행차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정조의 행렬을 그린 것이로군요.

그 정조의 힘찬 어필도 있구요.

원래 여덟 폭 병풍화이나 지금은 세 개의 족자로 나뉘어 전해진 김홍도의 군선도(群仙圖).
추가 복원을 했는지 조명 탓인지, 책에서 보았던 것보다 색채나 명암이 더 훌륭하네요.

그리고 여기서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가 나와야 하는 타이밍인데...
김홍도의 추성부도(秋聲賦圖)와 함께 작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습니다.
이건희 특별전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바람에 여기 있을 때보다 더 보기 힘들어졌죠;;
그래서? 그 허전함을 대신하려는지 윤명로 화백의 "겸재예찬"이 걸려있습니다.
전혀 다르지만 인왕제색도의 느낌을 전하는 이 그림이 M1관에 걸린 유일한 현대화입니다.

마지막 1층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은제 아미타삼존여래 좌상은 고려 말에 만들어졌는데
내부에서 발견된 문서의 시주자 명단에 몇년 뒤 조선을 건국하는 이성계의 이름이 있다네요.

왕년에 만화 "공작왕" 좀 봤던 이라면 친숙할 밀교의 금강저와 오고령도 있고

예술품의 가치와 크기는 별개라지만 국보 금동대탑쯤 되면 입이 벌어지지 않을수 없습니다.
국내 최대 크기라던가 고려 목탑 양식을 잘 보여준다던가 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이 나라에서
이런 크기의 유물이 살아남을수 있었던것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 아닐지;;

그리고 계단을 통해 지하 로비로 돌아갑니다.

제각기 다른 세 건물이 모여있는 모양도 그렇고 딱히 방향성 없는 올스타식 수집품도 그렇고
이 미술관과 그 소장품들에 대해 부잣집의 도락 내지 돈잔치라는 감상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한 개인(집안)의 수집품으로는 믿기 어려운, 국립박물관 뺨치는 질과 양에 살짝 어이도 없고
이번에 다시보니 그래도 아무 의미없는 곳에 허투루 쓰는 것보다는 나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이 다음 얘기는 현대 미술을 소장한 M2관에 마저 다녀온 뒤에 하도록 합시다. 근데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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