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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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의 부여 by glasmoon



정작 결혼식은 천안인데 구경은 가는 길 용인에서 하고, 끝난 뒤에는 바로 부여로 갔습니다.
물론 천안 근처에도 가볼 곳이 있지만 지난 겨울 부여 여행의 마무리를 미처 하지 못했거든요.



익산을 거쳐 부여로 왔던 그 날이 하필 지난 겨울 중에서도 가장 추웠던 날이었기에
외풍을 피할 수 있는 부여 박물관(금동대향로)과 정림사지 박물관만 보고 그만 철수했더랬죠.
하지만 이번에는 천안 일정을 끝내고 왔더니 이미 해가 지고... 저 기마상은 계백 장군인가요.



모처럼 왔는데 그냥 들어갈 수는 없어 궁남지의 야경을 구경하러 갑니다.
'무왕이 궁 남쪽에 못을 팠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궁남지(宮南池)라 이름붙여졌죠.
여러모로 비슷한 성격의 신라(경주) 월지(안압지)보다 40여년 빠른 인공 조경입니다.



연못 주위로는 연꽃들과 그네, 연못 한가운데에는 정자, 정자로 이어지는 긴 다리까지
분위기가 근사해서 밤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습니다.



하지만 정자(포룡정)와 다리가 백제 시절에 만들어질 물건일 리는 당연히 없거니와
이 궁남지 자체가 사서에 기록된 그 연못이 맞느냐는 증거도 부족해 쪼금 애매하긴 합니다?



아무튼 연못과 정자와 다리라는 조합의 효과가 워낙 좋으니 부여 구경에서 빼놓을 수 없죠.
나오면서 서쪽 하늘을 찍은 이 사진은 마치 포룡정에 악의 기운이 모여드는 것만 같은? 크크~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골목 사이로 조명이 비추고 사람들이 모여든다싶어 따라가 보았더니
지난 겨울 찾아갔던 신동엽 문학관입니다.

신동엽문학관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백제 문화제 기간이라고 신동엽 문학관 뜰에서 작은 음악회를 하길래 또 좋은 구경을 했죠.
저도 음악 공부를 쪼금 했지만 요즘은 이런 소규모 공개 공연도 연주나 장치나 워낙 잘하셔서
볼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그리고 숙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부여가 아무리 시가 아닌 군청 소재지라지만
중심가에 관광객이 머물만한 숙소가 거의 없다는건 여행을 계획하는데 있어 큰 고민이 됩니다.
강 건너 백제문화단지와 골프장을 낀 리조트는 처음부터 빼고, 청산성 아래 한옥펜션단지는
일찌감치 예약이 차 할 수 없이 시내의 모텔에 왔더니만 와 이건 좀 이라는 소리가 절로..--;;



아무튼 쾌적하지 않은 밤을 보내고 나왔습니다.
근처에 정갈한 외관의 부여성당이 있어 구경하고 싶었지만 주일 9시가 넘도록 열리지 않아 포기.



공주를 상징하는 인물이 무령왕이라면 부여를 상징하는 인물은 당연히 그의 아들 성왕이겠죠.
임시 수도였던 웅진(공주)를 떠나 사비(부여)에 자리잡은 뒤 신라와 손잡고 중흥을 꾀한 결과
안장왕 사후 전성기가 끝난 고구려를 상대로 한강 유역을 되찾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동시대 신라에서 튀어나온 젊은 왕이 하필 진흥왕;;; 그래서 결국 끝이 좋진 못했죠.



부여 시내에서 부소산성으로 가는 길, 부소산성 입구 서쪽 기슭에 서있는 기묘하게 생긴 건물은
국립부여박물관의 옛 건물입니다. 그 유명한 김수근의 설계로 세워져 1993년까지 이용되었죠.



하지만 개관 당시부터 여러 신사 등 일본 건축물과 닮았다는 왜색 논란이 불거진데다
건물 자체가 크지 않아 전시 공간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커져 현재의 박물관으로 옮기게 됩니다.
사실 현존하는 백제의 건축물이 사실상 없다시피하므로 그 영향을 받았을 일본의 건축물을
참고했을 수도 있지만 부정적인 인식은 피할 길이 없어 김수근의 흑역사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아무튼 공들여 만든 건물을 쉬이 없앨 수도 없으니 계속 용도를 바꿔가며 연명하고 있죠.
지금은 무슨 체험관과 미술 갤러리로 사용하는 모양입니다.
현재의 국립부여박물관은 저번에 소개했었죠?

국립부여박물관 - 백제인, 돌을 다스리다



그리고 아침 산책의 목적지인 부소산성.



어쩔수 없이 비교하게 되는 공주의 공산성에 비하면 확실히 규모가 큽니다.
하지만 상당 부분 복원이 이루어진 공산성과 달리 부소산성에 성의 위용은 거의 남아있지 않죠.



부지가 넓어 산성 내에 여러 유적지들이 있으나 누구나 찍는 원픽이라면 역시 낙화암?
다들 아시겠지만 낙화암(落花岩)은 절벽의 바위이고, 바위 위의 정자는 백화정(百花亭)입니다.



강을 내려다본 광경도 상류에 있는 공산성의 확대판이랄까, 백제의 산성들이 워낙 강과 절벽을 낀
입지를 좋아했던것 같기도 하고, 물론 망국의 순간을 겪었다는 슬픔의 무게가 더해졌지만요.



낙화암의 전체 모습을 확인하려면 차를 타고 백마강(금강) 맞은편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저는 분명 낙화암에 처음 와보는건데 왜 풍경이 눈에 익을까 했더니 왕년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낙화암 삼천궁녀 투신을 합성한 어설픈 CG 장면이 워낙 유명해서 짤로 봤기 때문인 모양. 아하하~



이래저래 강가로 나왔겠다 대충 밥때도 다가오겠다 위 사진에 나온 유람선을 타는 나루터 옆의
장원막국수로 갑니다. 근처라고 간건데 여기 엄청 유명한가봐요? 영업 시작 시간에 맞춰 갔는데도
이미 안에서는 한창 먹는 중이고 벌써 대기 줄이;;



메뉴는 막국수와 편육 둘 뿐인데 둘 모두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꽤나 차이를 보입니다.
익숙한 춘천식 막국수와 비교하면 갓 뽑은 메밀면을 썼다는걸 제외하면 국물 양념 모두 다르고
편육도 압축해서 식힌 그 편육이라기보다 우리가 보통 먹는 수육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근데 뭐 아무렴 어때요? 맛있으면 됐지!



밥도 먹었으니 다시 밖으로 나가야죠? 부여행 마지막 목적지는 과거 능산리 고분군으로 알려졌던
부여 왕릉원입니다.



모두 십여 기 정도의 릉이 있지만 이미 오래전에 도굴당해 무덤의 주인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조성 연대나 방식 등의 정황에 의해 몇몇 왕의 릉을 추정하는 정도죠.
발굴하면서 커다랗게 입구가 덧붙여진 우측 1호분은 성왕의 아들 위덕왕의 무덤으로 여겨집니다.



동쪽의 고분군과 서쪽의 고분군 사이에는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과 태자 융의 가묘가 있습니다.
의자왕과 융은 백제가 멸망하면서 당나라로 끌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고 북망산에 묻혔는데
1990년대 부여군에서 북망산을 조사한 결과 두 사람의 묘역으로 추정되는 곳을 확인하고
흙 일부를 가져와 이렇게 가묘를 만들었다네요. 이것으로 두 사람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렸을까요?



두 가묘의 왼쪽으로 능산리 사지와 함께 덩그러니 돌출된 무덤 몇 기가 보이는데...



이 무덤은 실제 릉이 아닌 복원된 모형입니다. 사신도가 그려져있는 걸로 보아 이것은 1호분을
재현한 것이겠군요. 실제 1호분은 지속적인 손상이 우려되어 현재 완전히 폐쇄되어 있습니다.



능산리 사지에 이제 남은 것은 터의 일부 뿐이지만 조망하는 자리에 겹쳐보는 유리틀을 두어
실제 절의 규모와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둔 것이 재미있네요.
고분군 바로 옆에 있으므로 역대 왕들의 명복을 비는 중요한 사찰이었다고 쉽게 짐작되거니와
그 유명한 금동대향로가 발굴된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와 달리 이름이 밝혀진 정림사지는 역시 저번에 다녀와서 기록을~
정림사지박물관과 G340



그리고 저는 도로에 차들이 넘쳐나기 전에 서울로 돌아가야만 하겠죠.
예정에 없이 결혼식을 핑계로 급히 내려와 지난번에 미처 채우지 못한 부분만 보완했을 뿐이지만
이것으로 십 수 년을 미뤄두었던 공주-부여-익산 백제 유적 다시보기를 마쳤다는데 의의를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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