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움 미술관과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시작된 뜬금없는 나비효과의 최종 종착지(...),
이건희 컬렉션 한국근현대미술 특별전을 보기위해 광주시립미술관을 찾았습니다.

먼저의 포스팅에서 말씀드린대로 이건희 컬렉션은 서울 전시를 끝내고 몇 개로 나뉘어졌는데
19세기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한국고미술은 국립광주박물관에,
그리고 아마도 핵심일 한국근현대미술은 이곳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열고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 백남준과 이건희
국립광주박물관 - 어느 수집가의 초대

호남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위에 국립광주박물관이, 아래에 광주시립미술관이 가까이 있죠.
아침 일찍 박물관을 구경한 저는 낮시간에 시내 구경을 한 뒤 마지막 5시에 미술관에 왔습니다.
아 한국근현대미술 특별전은 사전예약 필수입니다!

전시는 해방 즈음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미술을 네 챕터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섹션, '계승과 수용'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것은 변관식의 "진양성"이로군요.
해방 전후로 활동한 변관식은 한국 산수화를 계승하면서 재해석하여 자신의 화풍을 만들었죠.

구한말 최후의 어진 화사로 알려진 김은호의 그림 "화기"도 있네요. 전통 화법에 일본과 서양의
화풍을 도입하여 발전시켰는데 이제는 제자 김기창과 함께 친일 활동으로 더 유명한지도..;;

그와 반대로 끝까지 민족주의자로 살았던 오지호의 풍경화들도 몇 점이나 걸려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빛과 기후에 맞는 인상주의를 만들었다는 평인데 역시 제 취향에는 "설경"이~

이 "노란 옷을 입은 여인상"을 포함하여 이인성의 그림같은 경우는, 막눈인 제가 보기에는,
유럽의 인상주의 그대로에 얼굴만 새로 입힌 것같은 느낌이어서 별 감흥이 없더라구요.

두 번째 섹션은 '한국화의 변용, '혁신'이네요.
우리나라 토속의 소재를 강렬한 오방색으로 표현하는 박생광의 "장승2"는 대번 눈에 띕니다.
일본에서 그림을 배워 거의 평생을 일본풍 그림을 그렸는데도 말년의 이런 변혁이란 정말!

제가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에 관심이 생긴건 우연히 찾았던 대전의 이응노 미술관에서부터였죠.
변화무쌍한 그의 자취 중에서도 민주화운동에서 영감을 얻은 "인간" 연작은 항상 뭉클합니다.
이응노미술관 - 내 방 창 너머

다채로운 작품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천경자의 "만선"도 있고

한국은행 지폐에 들어가는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모자 영정으로 대표되는 이종상 화백이
이런 과감한 추상화도 그렸었군요. "원형상91-29".

세 번째 섹션 "변혁의 시대, 새로운 모색"에서 우리가 아는 올스타급 화가들이 나옵니다.
박수근의 "세 여인"(좌상), 장욱진의 "새와 가족"(좌하), 이중섭의 "비둘기"(우) 등등~
이들 화가는 너무나 유명한데다 이름을 붙인 미술관들도 다녀와서 포스팅했으므로 생략?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 한가한 봄 날, 고향으로 돌아온 아기업은 소녀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 장욱진 에피소드 II
이중섭 미술관 - 이향異鄕의 품

하나의 캔버스 안에 구상(인물)과 추상(기하)를 같이 넣는 '하모니즘'을 창시한 김흥수의 "누드".
물감이 흘러내릴 것만 같은 표면의 질감이 대단한데 역시 사진으로는 잘 전달이 안되네요.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를 그린 강요배의 "억새꽃"이 마냥 예쁘게만 보이지 않는건 제주의 역사
때문이겠죠. 화가부터가 동명이인으로 오해받아 학살당하지 않으려고 특이한 이름을 받았었다니.

마지막 섹션 "추상미술과 다양성의 확장"에 왔습니다. 일단 김환기는 촬영 금지(...)라니 빼고,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보여주는 유경채의 "비둘기 치는 소녀들"부터~

단색화가 주류이던 시기에 뚜렷한 색채로 추상을 작업한 하인두의 "합장하는 사람".
합장(기도)하는 사람이라니 성당이나 교회의 색유리화(스테인드글라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한결같이 대비되는 원색으로 우리나라의 산과 자연을 표현하는 유영국의 작품.
올 여름 다녀왔던 국제갤러리의 기념전이 참 좋았는데요.
국제갤러리 - 유영국의 색

전광영의 "집합"은 정면에서는 특징이 드러나지 않아 옆에서 찍어보았습니다.
어릴적 한약방을 하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한자가 적힌 종이(약봉지)로 만드는 작업을
역시 올 여름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었는데요.
그러고보니 석파정 서울미술관의 안병광 컬렉션이 이건희 컬렉션에 비해 규모는 부족할지언정
한국근현대미술에 한정할 때 질에서는 밀리지 않아 보입니다. 미리 봤던게 공부가 됐네요.
석파정 서울미술관 -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마지막으로 김병기의 7폭 연작 "산악도"를 보면서 전시회 구경이 끝났네요.

물론 아는 작가이거나 인상적인 작품만을 일부 찍어와서 소개했을 뿐 전체 규모는 훨씬 크므로
이 전시 하나가 사실상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사를 훑고있다고 보아도 좋겠습니다.
외국 유명 화가들의 작품은 외국의 큰 미술관들에 많지만 우리나라 주요 작가들의 작품들은
한 자리에서 볼 기회가 많지 않으므로 더 중요하달까, 이걸 다 사모은 재력이 가늠이 안된달까.
뒤늦게 돌기 시작한 이건희 컬렉션 구경은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중섭 특별전만이 남았는데
서울 전시는 역시나 예약이 하늘의 별따기라 가망 없어 보이네요. 나중 기회를 노려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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