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제가 (겁도 없이) 덜컥 성당 여행을 시작했을 때부터 2022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계속 공사중인 큰 성당이 두 곳 있습니다. 먼저 경기 광주의 천진암 대성당은
100년의 시간을 들여 2080년에 완공 봉헌한다는 계획이라 제가 볼 수 있을것 같지 않고,
다른 하나가 화성의 남양성모성지에 지어지는 성모마리아 대성당이었죠.
오랜 공사 끝에 2020년 준공된 대성당은 이미 신자에게도 건축학도에게도 순례지가 되었으나
저는 성당으로서의 모든 준비가 끝나고 정식으로 봉헌되면 가겠노라며 버티기를 두 해,
그 고집이 무색하게도 지난 주말 느닷없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또 덜컥 다녀왔습니다.

대성당의 미사 시간은 매일 오전 11시이고 성당 내부는 9시 30분부터 열린다기에 9시쯤 도착.
햇살이 아직 넘어오지 않아 살짝 어둑어둑합니다.

남양 읍내를 서쪽으로 지나며 만나는 이 나즈막한 골짜기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이름없는
많은 분들이 순교한 곳입니다. 처형을 앞둔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성모에게 기도를 올렸기에
1991년 우리나라의 첫 성모 성지로 선포되었죠. 1989년 이곳에 처음 발령받은 이상각 신부가
30여년간 공들여 가꾸고 세상에 알린 결과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입구에서 올라가며 만나는 왼편의 작은 건물로 들어가니 어두운 방 안의 하나 있는 창문으로
바깥의 성모자상이 보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이미 여러 분들이 초를 봉헌하고 가셨네요.

조금 더 올라가니 웅장한 야외 제대를 시작으로 성지의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야외 미사때의 의자를 겸할, 소나무 숲 속 많은 신자들이 봉헌한 기념석들.

성지의 중심에 자리하는 예수상 뒤로 저 멀리 우뚝 솟은 두 개의 탑이 대성당입니다.
왜 하나도 아니고 셋도 아닌 둘인지에 대해 설계자 마리오 보타도 딱히 설명이 없었다는데
혹자는 기도하는 손이라고도 하고, 이렇게 보니 세상을 향해 벌린 예수님의 팔 같기도 합니다.

성모상은 동굴 속에도 모셔져 있구요.

대성당이 세워지기 전 그 역할을 대신했을 경당은 닫혀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네요.
이곳 또한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이곳에서 30년간 쌓은 기도의 역사도 결코 가볍지 않죠.

이제 본격적으로 성당을 향해 들어가는데, 분명 작년에 조경 공사가 끝난 것으로 들었건만
접근성 개선을 위해 다시 공사를 하는고로 이 불타는 단풍 밑으로는 갈 수가 없고;;

바깥쪽 길로 좀 더 크게 돌며 들어갑니다. 어느 쪽이든 성지의 의미에는 차이가 없죠.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두 개의 탑, 그리고 그 가운데로 쏟아지는 빛.
약 40미터 높이의 탑신 사이에 종 일곱 개가 걸려있습니다.

기하학적 구조와 둥근 탑, 붉은 벽돌에 이르기까지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의
시그니처가 총출동했군요. 큰 성당임에도 탑 외에는 두드러지지않고 골짜기 안에 들어앉은 모습.
마리오 보타의 국내 건축물 중에서 리움 미술관을 최근에 다시 다녀왔더랬죠.
리움 미술관 - 어느 집안의 보물 수장고

성당 안에 들어서면 신의 세계인 성전으로 들어가기 위해 긴 계단을 지나야 합니다.
이 엄숙하고 아름다운 계단을 '천국의 계단'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

그리고 드디어 대성전입니다.

분명 대성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커다란 공간임은 확실한데 웅장함이나 위압감같은 것보다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완만하게 아치를 그리는 이 타원형 천장 때문입니다.
목재의 물성과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느낌이 마치 클래식 공연장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실제로 연주회장으로도 쓰일 것을 염두에 두고 음향 문제에 많은 신경을 쓰기도 했구요.

성전 내부는 아직 미완성이어서 미사에 쓰일 의자를 비롯하여 성가를 연주할 오르간,
그리고 좌우 벽면에 늘어선 제실(채플) 들이 비어있는 채입니다.

왼쪽 맨 앞 제실만은 파티마의 성모상이 모셔져 있군요.

제대 주변부에서 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밖에서 보았던 두 개의 탑이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 기저부가 열려 대성전과 통합됨으로써 또다른 공간인 제대를 구성하고 있는 거죠.
그 결과 이렇게 안에서 보면 두 개의 탑은 사라지고 하나의 빛의 기둥만이 남게 되는데
두 탑신 사이에 종이 걸려있던 것도 그렇고, 원래 교회 탑의 목적이 종탑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진정한 탑은 두 개가 아니라 그 사이에서 하늘을 향해 열린 하나였는지도 모릅니다.

십자고상과 두 제단화는 모두 이탈리아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Giuliano Vangi)의 작품입니다.
우리가 아는 고통과 죽음의 모습이 아니라 젊음과 강인함의 모습으로 표현되었죠.

두 폭의 제단화 중 오른쪽(사진 상단)은 "최후의 만찬", 왼쪽(사진 하단)은 "수태고지".
최후의 만찬에는 이상각 신부(예수님 오른편)와 마리오 보타(왼쪽에서 네번째)도 그려넣었죠.
이들 그림은 투명한 판 위에 그려져 제대 뒤가 살짝 비치는 한편...

뒤에서 보면 앞에서 본 반대면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수태고지 왼쪽 세 번째 여성은 뒷모습이 아니라 아예 다른 인물, 한복 입은 여성의 모습이군요.

최후의 만찬 속 등장 인물들의 뒷모습 위로 탑의 꼭대기가 보입니다.
이 탑을 통해 제대 주위의 채광은 물론 자연스러운 환기를 통해 냉난방 효율까지 높인다네요.

안에서 한번 지나갔던 것과 비슷한 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옵니다.

이제야 처음으로 보는, 골짜기에 반쯤 묻힌 것만 같은 대성당의 전체 모습.

후면 좌우를 가로지르는 긴 벽과 그를 마주보는 반원형 경사지는 마치 고대 극장같기도 합니다.
매 부분의 인상이 너무나 달라 방문 전 사진으로 볼 때는 도대체 한 건물이기는 한건가 싶었던게
드디어 조금은 이해가 되었네요.

이제 반대편 길을 따라 마지막 단풍을 즐기며 내려갑니다.

남양성모성지를 대표하는 남양성모님상이 여기에 있었군요.
올라오면서 초봉헌실에서 보았던 것은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진 보다 작은 상이었던 모양입니다.
맛있는 것을 아껴먹으려는 아이처럼 나중에 보겠다며 아껴두다 충동적으로 방문한 남양성모성지.
현재 준공된 대성전 외에도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가 맡은 경당(Tea Chapel)과 함께
건축가 승효상의 순교자의 언덕, 성지 입구에 평화나눔센터 등이 마저 세워질 예정입니다.
내년 오르간 설치와 함께 성당이 봉헌되고, 여러 건물이 완공되어 성지가 완전한 모습을 갖추면
저는 또 찾아오게 되겠죠. 그 전에라도 또 충동적으로 올지도 모르구요.
성당 여행; 음성 감곡성당 (매괴성모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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