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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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트베르펜 대성당: 루벤스와 네로 by glasmoon



가을 들어 여기저기 놀러간다, 이건희 컬렉션 구경한다며 한동안 잊고 있었네요.
지난 6월의 여행 기록은 겨우 반을 지나 안트베르펜(Antwerpen, 앤트워프)에 들어간 참입니다.
그리고 안트베르펜에는 유명한 성모마리아 대성당(Onze-Lieve-Vrouwekathedraal)이 있죠.



성당 옆 그로엔플라츠(Groenplaats, 초록광장)에서 성당 쪽으로 접근하면 시야에 들어오는건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동상입니다. 둘 모두 안트베르펜을 상징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이야기는 조금 뒤에~



유럽의 여느 옛 대성당들과 마찬가지로 안트베르펜 대성당 또한 구시가지의 크고작은 건물들에
둘러싸여있어 가까이 다가갈수록 디테일을 보는 것은 더 어려워집니다. 지상에서 전경을 보는건
그로엔플라츠가 사실상 유일한 포인트지요. 이렇게 사이사이 드러난 것만 보아도 오랜 시간동안
각기 다른 자재와 양식으로 만들어졌음을 쉽게 알수 있습니다.



대성당은 1352년 기존 성당을 대체하면서 저지대 최대의 고딕 성당을 목표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초 계획으로는 전면에 123 미터 높이의 종탑을 두 개 갖추는 것이었으나 170여년 뒤인 1521년
완공될 때 남쪽 탑은 절반 정도가 올라갔을 뿐이었고 결국 이 탑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성당 바깥 남서쪽 코너에는 이 성당을 만드는데 생애를 바친 얀과 피터르 아펠만 부자
(Jan en Pieter Appelmans)의 조각을 만들어 그들을 기리고 있죠.



비록 완성된 탑은 하나 뿐이지만, 아니 어쩌면 하나 뿐이기에, 정말 까마득히 높아 보입니다.
150 미터급이 즐비한 프랑스나 독일의 대성당들에 비할 바는 못된다 하더라도 베네룩스 삼국
중에서는 최고 높이이기도 하거니와 전면의 좌우 폭에 비해 비율상 유독 높지 않을까 싶네요.
안타깝게도 높은 복쪽 탑은 현재 보수 중이어서 장막에 가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 탑 아래에, 마치 광장 일부를 담요처럼 덮은 모양으로, 네로와 파트라슈가 있습니다.
사실 "플랜더스의 개(A Dog of Flanders)"는 영국 작가 위다(Ouida)의 작품이 원작인데다
일본 후지 TV의 세계명작극장이 히트하면서 동아시아에 알려졌을 뿐 정작 현지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마는. 이 조각상도 모양에서 보듯 일본 쪽에서 만들어 기증한 것이라고.
원작의 배경은 안트베르펜 외곽 남서쪽의 호보컨(Hoboken) 지역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몇 곳이나마 유럽의 알려진 성당들을 보고 다녔지만 이 안트베르펜 대성당의 내부는 묘하게
서울의 명동 대성당을 생각나게 합니다. 유럽 대성당 치고는 과하게 크지 않은 것도 있겠고,
내부 장식이 화려하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역시 비율의 문제가 큰것 같네요.



물론 비슷하게 보이는건 중앙의 신랑에 중점을 두어 보았을 때고, 기본적으로 좌우 측랑이 둘인
명동 대성당과 여섯이나 되는 안트베르펜 대성당은 물론 공간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이 성당 또한 원래는 유럽의 다른 대성당들처럼 각종 예술 작품들로 가득 채워졌을 터이나
완공 후 겨우 십 년쯤 지난 1533년에 일어난 화재로 일부가 소실되어 일찌감치 복원을 거친데다
1566년 종교개혁과 맞물린 성상파괴의 광풍 속에서 그 대부분이 파괴 또는 도난당했습니다.
1585년 네덜란드 독립전쟁에서 안트베르펜이 스페인령으로 남으며 이제는 안정을 찾는가 했지만
1794년 프랑스 혁명군이 들이닥쳐 또다시 파괴와 약탈을 일삼았죠. 결국 성당이 네오 고딕 양식의
지금 모습이 된 것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일이니 비슷한 시기 세워진 명동 성당과 닮은 것도
단순한 우연은 아니지 싶습니다.



성상파괴 이전의 것으로는 사실상 유일하지 않을까 싶은, 성당 이름의 기원인 성모상을 제외하면
성당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 중 하나일 성모 경당도 나중에 복원된 것이고...



색색이 화려한 색유리화(스테인드 글라스)도 대부분 19세기 후반에 다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입구 위 대형 파이프 오르간 역시 피에르 시벤(Pierre Schyven)이 19세기 말에 제작한 것이지만
오르간이 들어가있는 목제 함은 드물게 17세기에 만들어져 살아남은 것이라는군요.



신랑과 익랑이 십자가 모양으로 교차하는 성당의 중앙 부근에 1993년 설치된 다른 오르간이 있고
그 좌우로 커다란 세 폭 성화가 두 점 있으니,



왼쪽(북쪽)이 1610년 만들어진 루벤스의 "십자가를 올림(De Kruisoprichting)",



오른쪽(남쪽)이 역시 2년 뒤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림(De kruisafneming)" 입니다.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이 성당에서 네로와 파트라슈가 죽을 때 보았다는 바로 그 그림이죠.
화가 루벤스의 이름을 국내에 알린 건 절반 쯤은 그 장면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어려서 궁금했던 이 그림의 원본을 나중에 찾아보고는 다소 의아? 실망? 했던 기억이 납니다.
화려하고 풍만한 바로크 회화 그 자체인 루벤스의 그림이 개인적 취향에 맞고 안맞고를 떠나
주인공이 누명을 쓰고 오갈 데 없어 얼어죽는 작품 내용과의 접점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인데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현실(네로)의 비참한 처지와 대비시키려는 의도였을까 싶기도 하네요.



그리고 이 두 그림 사이, 제대 뒤 성가대석을 지나 십자가의 머리에 해당하는 가장 뒷부분에...



대성당에 걸려있는 루벤스가 그린 일련의 작품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1626년에 완성된
"성모 승천(De Tenhemelopneming van Maria)"이 있습니다.
천하의 루벤스라도 차마 성모님마저 몸매를 과시하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천만 다행이로군요.
이 그림들은 1794년 나폴레옹에 의해 프랑스 파리로 보내졌다가 1815년 반환되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신구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종교개혁과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불꽃에 휘말렸지만
안트베르펜이 네덜란드로 독립하지 못하고 스페인령으로 남았다가 구교국인 벨기에로 전환되어
성당의 지위와 기능을 유지하고 복원된걸 보면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19세기 초 암혹한 시대에 이곳에서 죽었다는 그림 잘 그리던 한 소년과 그의 개 이야기도.



이렇게 안트베르펜에서 네덜란드-벨기에 여행기 재개되었습니다. 이번엔 끝까지 갈수 있을라나.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번에는 근처에 있는 루벤스의 호화 저택으로 가볼까요?


암스테르담 구교회와 신교회

덧글

  • 잠본이 2022/11/23 11:11 # 답글

    정말 플란다스의 개 아니면 루벤스 이름도 못들어봤을 법한데 현지에선 듣보잡이란게 개그...
  • glasmoon 2022/11/23 13:45 #

    뭐 일본이나 중국에서 우리나라 인천? 배경으로 사람들 삭막하게 묘사한거 내놓으면 떨떠름할것 같긴 합니다. -_-
  • 잠본이 2022/11/24 10:37 #

    인기가 없을 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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