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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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하우스: 세상을 다 가진 화가 by glasmoon



안트베르펜 대성당에서 플랜더스의 개 루벤스가 그린 훌륭한 제단화들을 보았으니
근처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가봅시다.



대성당을 나와 메이르 대로를 따라 동쪽으로 500 미터쯤 가면 대로 남쪽 골목 안으로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가 생전에 거주하고 또 작업하던 17세기의 집,
루벤스 하우스(Rubenshuis) 박물관이 있습니다.



루벤스는 엄밀히 독일 태생이지만 성장도 활동도 대부분 저지대(벨기에)에서 했으므로 사실상
벨기에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아버지는 칼뱅주의자였으나 아들이 열 살 무렵일 때 사망한 뒤
원래 가톨릭이었던 어머니는 다시 개종하면서 아들과 함께 안트베르펜에 정착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가톨릭 왕가와 귀족들이 좋아하는 바로크풍 그림을 그려 성공하게 되는데...



이 집터를 구입하는 1610년 루벤스가 33세였다니 얼마나 크게 성공한건지 가늠하기 어렵군요.
그는 이 터에 직접 설계한 ㄷ자 모양의 2층 저택과 안뜰, 그리고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집은 그의 사후 1660년에 매각되었다가 복원을 열망했던 건축가 앙리 블롬(Henri Blomme)이
1921년 사망하면서 남긴 유산을 토대로 1937년 안트베르펜 시에서 매입, 복원 과정을 거쳐
1946년 루벤스 하우스 박물관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바닥도 벽도 가구와 장식도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걸 단박에 알 수 있게 하는
이 응접실의 벽난로 오른쪽 벽에는 어느 귀부인의 초상화가 아니라 원래 1630년에 그려진
루벤스의 자화상이 걸려있어야 하는데...



방의 위치를 옮긴 건지 대여 전시를 나간 건지 하여간 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위치를 모르고 무작정 찾기엔 이 집에 걸려있는 그림들이 너무나 많거든요.



루벤스 본인, 그의 제자,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화가들의 작품 수 십여 점이 집을 채우는데
걸려있는 홀의 크기도 그렇고 이쯤 되면 개인의 집이라기엔 그냥 미술관이었던게 아닐지.



게다가 이 공간은 뭐 신전인가? -_-



그래도 침실의 침상 크기는 고만고만했네요. 보온이 목적이라 크면 효율이 떨어져서 그런가.



이 방의 왼편에 걸린 초상화는 루벤스의 조부모를 그린 것입니다.
저 시대에 초상화를 그려서 가졌을 정도면 꽤 집안의 경제적 여건이 꽤 풍족했다는 뜻이죠.



저택의 남쪽 건물은 아예 1층과 2층이 트여 큰 그림들을 위한 갤러리가 되었습니다.
왼편 아래로 보이는게 아마 이 집에 걸려있는 루벤스의 그림 중에서 한 번씩 언급되는
"낙원의 아담과 이브(Adam en Eva in het Paradijs)"입니다.



이 그림은 루벤스가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기 전인 1600년경에 그린
작품입니다. 다작으로 유명한 루벤스라도 현재까지 남아 전해지는 초기작은 몇 점 안되는데
아직 루벤스 특유의 역동적인 동세나 화려한 색채가 갖춰지기 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안을 한 바퀴 돌았으니 바깥으로 나와봅니다.
암스테르담의 렘브란트 하우스도 꽤 큰 집이었지만 대지 면적에서 이미 비교가 되질 않는군요;;



이쯤 되면 저택이라기보다 궁전이라고 해야 더 어울리는 건지도?
실제로 이탈리아를 다녀와서 이탈리아에 흠뻑 빠져있었던 루벤스는 이 저택을 설계하는데
이탈리아에서 보았던 르네상스식 궁전들을 많이 참고했다고 합니다.



저택 뒤편에서는 정사각형 모양으로 깔끔하게 손질된 바로크식 정원이 멋지게 마무리합니다.



작품은 물론 인간관계도 원만했던 루벤스에게 각국의 교회와 귀족들로부터 주문이 쇄도했고
수많은 문하생들로 꾸려진 기업형(?) 작업실이 쉴새없이 작품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루벤스 본인은 일부만을 그리거나 전체를 감독만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뭐라 할 사람도 없었죠.
그렇게 재산은 늘어가는 와중에 친분이 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요청으로 스페인과 네덜란드,
영국을 오가는 외교관으로 활약했고 그 결과 스페인과 영국으로부터 귀족 작위까지 받게 됩니다.
그야말로 당시에 예술가가 얻을 수 있는 부와 명예의 끝을 이루어낸 사람이 아닐런지.



루벤스는 1640년 만성 통풍으로 인한 심부전으로 62세에 사망했고 그의 유해는 안트베르펜의
성 야고보 성당(Sint-Jacobskerk)에 안치되었습니다. 성당 안에 친구와 제자들이 다수 참여한
루벤스를 위한 예배당이 만들어졌고 그 중앙은 루벤스가 직접 그린 그림이 장식했죠.
제가 갔을 때는 성당이 폐쇄되어 볼 수 없었던게 살짝 아쉽네요.


렘브란트 하우스 - 어느 화가의 작업실

덧글

  • 두드리자 2022/11/27 17:54 # 삭제 답글

    만성 통풍이라니. 다 가졌지만 가장 중요한 걸 가지지 못했군요.
  • 잠본이 2022/11/28 10:41 #

    그래도 저 시대에 60대까지 살았으니 제법 오래 버텼네요
  • glasmoon 2022/11/28 14:38 #

    뭐 통풍은 왕의 병이라지 않습니까(...)
  • 잠본이 2022/11/28 10:41 # 답글

    그야말로 집을 빙자한 미술덕질의 현장
  • glasmoon 2022/11/28 14:39 #

    예나 지금이나 성덕이야말로 남자의 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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