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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by glasmoon


썰렁한 이곳을 찾아주시는 여러분 최악의 강추위 속에서 연휴 잘 보내셨나 모르겠습니다.
저는 행사 준비, 본행사, 본행사(2), 가족 문병이라는 스케줄로 나흘이 휙 지나가버렸는데,
첫날 행사 준비에 앞서 미술관 한 곳을 다녀온게 유일한 과외 활동(?)이었네요.



지난 가을 이건희 컬렉션을 구경하고 다니면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게 이중섭 특별전이었죠.
예약하기가 너무 어려워 잊고 지내다 연휴 덕분에 빈자리가 났기에 첫날 아침 다녀왔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찾아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입니다. 한 9년쯤 전에, 그때도 겨울이었는데,
무언가 중요한 전시를 본 것도 같은데 정작 전시 자체는 별로 기억이 안나고... 뭐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의무 교육을 받았다면 누구나 알고있는 근현대 화가 첫 번째가 이중섭이죠.
이건희 씨가 사후 국가에 기증한 1천 3백여 점에 달하는 국내 작품들 중에 들어있는 90여 점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10여 점을 합친 특별전 이중섭이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



평안도 태생인 이중섭은 활동 기간이 길지 않았던데다 그나마의 앞 절반 시기에 그린 그림은
흥남 철수때 내려오면서 이북에 두고왔기에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남은 작품이 많지 않습니다.
작가가 40년대에 보낸 엽서 뒷면에 그린 그림들이 귀중하게 여겨지는 이유지요.



대부분 일본 유학 시절 만나 훗날 아내가 되는 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에게 보낸 이 엽서들은
아직 커다란 어려움을 겪기 전, 재능있고 야심있는 젊은 작가의 면면들을 보여줍니다.
훗날 그를 상징하게 되는 여러 이미지들이 어떻게 잉태되었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수십 점의 엽서화 중에서도 "상상의 동물과 사람들", "상상의 동물과 여인"(위 그림) 같은 경우
우리가 익히 아는 이중섭의 그림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초현실주의적 성향을 보여줍니다.
과감한 표현은 물론이거니와 동물을 즐겨 그리는 것도 이 시기부터 이미 정해졌던 모양이군요.



50년대로 넘어와 "다섯 아이와 끈" 즈음부터 우리가 익숙한 이중섭의 그림들이 나타납니다.
첫 아들을 병마에 잃기도 해서인지 가족에 대한 이중섭의 사랑과 그리움은 주요 주제가 되죠.
그림 속의 아이들은 서로 살을 맞대거나 끈으로 이어지거나 하는 식으로 유대를 강조합니다.



특별전의 타이틀 역할을 하고있는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에서는 제목처럼 아이들과 더불어
물고기와 게가 등장하는데, 이는 월남 후 전쟁을 피해 제주도에서 생활했던 시기를 상징합니다.
이게 정말 전쟁때 그려진 그림이 맞나 싶은데...



해초를 뜯고 게를 잡아 가족이 겨우 연명했던 시절이건만 작가는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꼽았죠.
가족들과 함께 큰 새와 물고기들이 그려진 이 "가족과 첫눈"은 앞서 엽서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역력함에도 가족들과 둘러싼 자연 사이의 따스한 유대감이 느껴집니다.



몰랐던 분야인데, 이중섭은 다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미술 밖 다른 예술과도 교류했던데다
어려운 형편에서 조금이나마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책의 삽화나 잡지 표지도 왕왕 그렸습니다.
작가가 평소 그리던 도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므로 변화상을 알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되지요.



이중섭의 그림 세계를 대표하는 거라면 뭐니뭐니해도 '소'일텐데,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에도
분명히 "황소"가 있고 이번 특별전에 전시될 거라고 들었는데, 안타깝게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걸 기대하고 오신 분이라면 연필 스케치 정도로 위안을 삼으셔야 하겠네요.



이중섭을 대표하는 또다른 그림들 중 하나인 은지화들은 별도의 어두운 방에 전시되었습니다.
가족을 일본으로 보내고 홀로 남아 궁핍한 삶을 이어가는 와중에 그림 그릴 종이도 부족해지자
담뱃갑의 은박지를 긁어낸 뒤 잉크를 스며들게 하는 식으로 만든 그림들이죠.



상황이 상황이기 때문인지 은지화의 주된 소재는 역시 가족입니다.
이중섭의 경우는 해방 직후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일본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라지만
아마도 그 심정은 지금도 국내에 많이 계실 기러기 아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게 아닐런지.



그렇게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그림 속에 남겨둔 채... ("춤추는 가족")



해협을 사이에 두고 떨어진 가족들에게 작가는 40년대의 엽서처럼 그림 편지를 보냅니다.
어린 아들들에게 보내는 짤막한 것들도 많지만 아내에게 보내는 이 편지는 특히 절절하네요.
내용에 등장하는 아고리는 유학 시절 턱(아고)이 긴 이(리)중섭에게 붙여졌던 별명이라고.



3년간의 처참한 전쟁은 끝났지만 작가의 어려운 생활상은 별다르게 나아지지 않는 가운데
작가는 가족들과 재회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며 막노동 와중에 많은 작품을 그려냈습니다.
소 연작들 중 상당수도 이때 만들어졌지만 이 "물놀이 하는 아이들"은 기존의 비슷한 그림들과
비교하면 형태도 색상도 많이 해체된 것처럼 보이는군요.

그리고 건강을 크게 해친 이중섭은 영양실조, 간염, 정신병 등이 겹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1956년 9월 만 39세라는 젊은 나이로 삶을 마감합니다.



제주에 살았을 당시의 거처를 복원하고 세워진 이중섭 미술관이 그 이름에 비해 매우 제한적인
작품들만 소장하고 있었음을 기억한다면 이 특별 전시는 현시점에서 이중섭에 대해 볼 수 있는
최대치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중섭 미술관 - 이향異鄕의 품

이건희 컬렉션 중에서 12점을 기증받은 이중섭 미술관은 그에 고무되었는지 기존의 건물을 헐고
10배 규모의 새 건물을 2025년까지 지을 예정이라는군요. 글쎄요, 열 두 점이라 해도 기존 건물에
충분히 전시하고도 남을텐데, 외양보다 내실에 더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 백남준과 이건희
국립광주박물관 - 이건희 컬렉션 어느 수집가의 초대
광주시립미술관 - 이건희 컬렉션 사람의 향기, 예술로 남다

덧글

  • 두드리자 2023/01/26 02:12 # 삭제 답글

    소가 없다... (털썩)
    미치게 춥네요. 소가 얼어죽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 glasmoon 2023/01/27 14:35 #

    소의 빈자리가 아무래도;; 두어 달만 있으면 덥다 소리 나올텐데 이번 추위는 좀 길게 느껴지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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