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팅이 많이 늦어졌네요. 이게 그러니까 지난 주말...도 아니고 지지난 주말이 됩니다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2주 연속으로 다녀왔더랬습니다.

그 전주, 그러니까 설 연휴때 이건희 컬렉션의 이중섭 특별전을 구경하러 갔더랬는데
현대차 시리즈인지 뭔지로 진행되는 최우람 작가의 개인전이 재미있어 보이더라구요.
그 날에는 또 다른 일정이 있어서 나왔다가 그 다음 주말에 그걸 보러 다시 간거죠.

최우람 작가는 저나 이곳을 찾아주시는 친한 이웃 분들과 겹치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나이대도 비슷하고(1970년생), 어릴때 TV 애니메이션(로봇물)을 좋아했으며, 그 로봇을 실제로
만들기를 열망했습니다. 이런 꿈을 가진 아이들은 공대나 기술학교를 통해 엔지니어가 되거나
미대나 미술학교를 통해 애니메이터가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작가는 특이하게도 미대를 거쳐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기계생명체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 입구 홀에 덩그러니 놓여진 "원탁"에서 작가의 작품은 이미 시작됩니다.
원탁을 받치고 있는 열 여덟 개의 머리없는 지푸라기 인간이 원탁 위의 머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며 기를 쓰지만 서로의 견제 끝에 머리는 영원히 원탁 위에서 굴러다닐 뿐이고
이 광경을 저 높은 곳에서 검은 새 세 마리가 천천히 돌며 내려다보고 있죠.

전시장 안에서 처음 만나는 "하나"는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거대한 꽃입니다.
잠시 지켜보며 서있자니 단순히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라 피고 지는 정도가 계속 바뀌는 모양이
정말 생명체처럼 느껴지는 구석이 있네요. 코로나19 검사 또는 진료 현장에서 사용된 방호복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작가가 이 시대에 바치는 헌화를 뜻한다고.

가장 큰 전시실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전시회의 제목이기도 한 "작은 방주"인데
실은 이 전시실에 놓여진 크고작은 작품들이 모두 작은 방주의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비상하는 날개와 달리 축 늘어진 몸체의 "천사"는 방주의 뱃머리 장식이고

"닻"은 이름 그대로 방주의 닻인 셈이죠. 다만 배로부터 끊어져 정처없이 흘러갈 뿐.

방주 뒤에 놓인 두 개의 이중 거울 구조물 "무한 공간"은 방주의 진행과 역동성을 보여줍니다.
반대편 방주 앞에는 문들이 다가오며 열리는 영상을 투영하는 "출구"가 있는데 사진이 없네요.

방주 자체에도 회전하며 전시장을 비추는 "등대"와 그 앞뒤의 "제임스 웹", 그 아래에서 팔을
들고있는 두 "선장"이 합쳐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작은 방주"는 선체에 국한되겠네요.

이 선체는 정해진 시간이 되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건조하고 기계적인 배경음 속에서
폐 종이 박스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노와 그를 잡고있는 팔들이 물결치듯 움직이는걸 보노라면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인다는걸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생명체처럼 느끼게 되네요.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의 기계생명체 센티넬을 눈앞에서 직접 보는 느낌이랄까.

이 노들은 계속 움직임과 속도를 바꾸어가며 장관을 연출합니다.
잠깐이나마 동영상을 찍어 GIF 움짤로 만들긴 했는데 이글루스에 올릴 방법을 모르겠네요. -_-

모든 조합이 맞추어져 다 열리면 이세계로 통하는 문이 열릴 것만 같은 "샤크라 램프"도 있고

앞에서 보았던 "하나"와 거의 흡사하게 만들어진, 생명의 순환을 의미하는 "빨강"도 있구요.

나오는 복도에서 번쩍이는 조형물이 단순한 장식인줄 알았더니 이 또한 작가의 작품이었군요.

"URC-1"은 폐차되는 자동차의 전조등들을, "URC-2"는 같은 차의 후미등들을 조합하여 만든 것.
자동차에 덕력 좀 쌓았다 자부하는 분이라면 이것들의 원래 차종을 알아맞힐 수도 있으시려나~
이번 전시를 위해 만든 건가 했더니 2014, 2016년에 만들어져 전시물들 중 짬이 되는 편이랍니다.

신문 지면이나 TV 뉴스 등을 통해 왕왕 소개되어 이미 많은 분들이 접하고 또 구경하셨을텐데
비슷한 시대에 비슷한 꿈을 가졌던 분이라면 그 꿈의 하나가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었는지
직접 보시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이 전시는 이달 말까지 진행되므로 보시려거든 서두르세요!
덧글
특히 "무한공간"은 접속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요.